TV 속 ‘아버지’… 가부장은 옛말, 아내 눈치보며 자녀에 올인

드라마 ‘라이브’에서 중년의 아들(배성우·위 왼쪽)이 노년의 아버지(이순재)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다정하게 마주보지도 않고 처음인 듯 어색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게 전해진다. 아래쪽은 아버지(오만석)와 딸(손예진)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tvN·JTBC 제공


과거 가정폭력 잘못 사죄 이혼한 아들 밥 챙겨주고…
은퇴 후 권위는 잃었지만 아내와 싸우며 자녀 감싸고…
젊은 아빠는 일·성공보다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손이 거치네. …내가 아버지 손 처음 잡아보는 거 알아요?” “난 어려서 네 손 많이 잡아봤어.” “뻥치시네. 맨날 술만 드셨으면서 언제 손을 잡아.” “네가 기억 못하면 없는 일이냐.” “국 있어요? 콩나물국 먹고 싶은데.” “벌써 끓여 놨어.” “와, 사십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맘이 맞네.”

6일 종영한 드라마 ‘라이브’(tvN)에서 어머니를 잃은 아들(배성우)이 아내를 떠나보낸 아버지(이순재)의 손을 잡고 걸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다. 드라마에서 중년의 아들과 노년의 아버지가 나누는 이런 대화는 낯설다. 자식을 위로하는 건 대체로 어머니의 몫이었고, 아버지의 손을 잡아 주는 건 주로 딸의 역할이었다.

늙은 아버지와 자신도 아버지가 된 늙어가는 아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익숙하지 않지만 그만큼 울림도 크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는 건 아들이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로 끝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가 보여줬다.

드라마가 비춰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순재는 ‘사랑이 뭐길래’(MBC·1991년)에서 가부장적인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아 당시의 대표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줬었다. 27년의 세월이 흐른 뒤 ‘라이브’에서 이순재는 대발이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지점을 살아가는 아버지를 그려냈다.

젊은 시절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라이브’ 속 이순재(양촌 아버지)는 요양원에 누워 지내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이혼 당한 아들의 밥을 챙긴다. 거동을 못하는 아내를 살뜰히 돌보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하고 조심스레 아들의 삶을 지지해주는 아버지가 됐다. 드라마에서 흔히 다루지 않았던 방식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현실 속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했다.

지금껏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무자비한 재벌, 아내와 자식들을 희생시키면서도 미안해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사람의 양극단을 오가는 일이 많았다. 가부장적인 권위에 집착하거나, 알고 보면 고통을 숨기고 홀로 희생하는 모습도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었다.

요즘 드라마에서는 평범하지만 공감 가는 아버지의 모습도 많이 나온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JTBC)에서 윤진아(손예진)의 아버지(오만석)는 평범한 60대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진아의 아버지는 은퇴한 뒤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아내 눈치를 보며 지내지만 자식들에게만큼은 든든한 지원군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대립하는 사이에서 딸에게는 엄마의 입장을, 아내에게는 딸의 상황을 설득시키려 애쓰다 실패하기 일쑤다. 이렇게 서툰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나이든 아버지들이 투박하고 조심스레 자식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달리 드라마 속 젊은 아빠는 이미 자식들과 가깝거나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만난 기적’(KBS)의 송현철(김명민)은 1등에 집착하는 딸(김하유)에게 “공부보다 잘 먹기, 잘 웃기, 잘 까불기, 이런 걸로 1등하는 사람이 훨씬 행복한 거야”라고 말하며 안아준다. 일이나 성공보다 가족과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투영돼 있다.

정석희 드라마 평론가는 “드라마와 현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드라마 속 아버지 모습이 다양해지는 건 현실의 반영인 동시에 바람직한 아버지상을 제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며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