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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앵글속세상] 새 생명이 찾은 마지막 피난처… 베이비박스에 아기 오던 날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는 조그만 손잡이가 달린 박스가 하나 있다.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곳은 사연이 있어 아기를 기를 수 없는 부모들이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 내부에는 신생아의 안전을 위해 CCTV 및 각종 온열장치 등이 설치돼 있다. 지난달 24일 신생아 보육교사가 베이비박스에서 아이를 꺼내고 있다.
 
신생아 보육교사 박혜미씨가 현황판에 현재 입실해 있는 아기의 인적사항을 적고 있다. 1376번은 2009년 12월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뒤 들어온 순서다.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67명에게 주사랑공동체교회로 들어온 후원품을 담아 매달 택배로 배송하는 또 다른 베이비박스가 있다. 보육교사가 베이비박스에 담아 보낼 분유를 정리하고 있다.
 
이종락 목사(가운데)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진 장애아 9명을 입양했다. 2012년 입양특례법으로 더 이상 입양을 할 수 없게 되자 7명의 장애아는 후견인으로, 2명은 동거인으로 등록해 총 18명의 입양아와 장애를 가진 친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 목사와 정병옥 사모(왼쪽 두 번째 안경 쓴 여성)가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자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서 ‘삐리삐리 삐리리리리’ 하는 알람이 울렸다.

보육교사가 재빨리 ‘베이비박스(baby box)’로 달려가 속싸개에 싸여 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같은 시간 사무실에서 24시간 CCTV 모니터를 감시하던 상담원이 교회 밖을 뛰쳐나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 산모를 설득해 상담실로 함께 들어갔다. 연락을 받고 온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의 첫마디는 이랬다. “고맙다. 아주 잘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를 지키고 큰 용기를 내 우리 교회를 찾아와주어서. 너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거야.”

질책 대신 칭찬을 받은 어린 산모는 이내 자신이 겪어 온 일을 하나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목사의 설득에도 산모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두고 가겠다고 했다. 그는 아기 엄마에게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 아이는 우리가 잘 보살필 테니 하나님을 영접하고 아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했다. 아기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뒤 교회 문을 나섰다.

베이비박스는 2009년 12월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45㎝ 넓이의 상자다. 갓 태어난 아기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아예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반인륜적인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 센터장 조태승 목사는 “한 달 평균 18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는데 출생신고가 되어야만 입양이 가능한 ‘2012년 입양특례법’ 이후로 70% 넘는 아이들이 입양되지 못하고 기관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임산부가 원하는 경우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출산하고, 가명으로 자녀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비밀출산법’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산모와 아이가 보호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베이비박스는 불가피하게 존재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미혼모에 대한 편견 등으로 출생신고의 장애물에 가로막힌 사람들이 베이비박스를 찾는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베이비박스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사진·글=이병주 기자 ds5ec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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