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나루 vs 용산나루… 두 재벌 미술관의 경쟁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개관전으로 준비한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레스트’전의 ‘부유하는 방송뉴스(Airborne Newscast)’. 이 작품은 관람자의 움직임을 센서가 감지한 뒤, 실시간 전송되는 뉴스를 그림자의 열기로 지우도록 했다. 뉴시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알렉스 카츠 개인전의 ‘코카콜라 걸’. 현대 초상 회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카츠는 이 작품에서 코카콜라의 이미지 색인 빨강을 인물의 배경색으로 쓰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롯데 알렉스 카츠 회고전… 광고 색상 활용 현대인 미감 자극
아모레퍼시픽 라파엘 로자노헤머 전… 관람객 참여형 미디어 아트 작품 전시
롯데, 미술사 거장 내세우고 아모레퍼시픽은 작가 발굴에 방점
삼성 리움 역할 대신할 가능성도


잠실나루와 용산나루를 진지로 삼은 재벌 미술관들의 신대전(大戰)이 펼쳐졌다.

롯데뮤지엄이 지난 1월 문을 연데 이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최근 재개관해 첫 기획전을 갖고 있다. 각각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 48위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야심 차게 준비한 미술관이다. 후발주자로서의 의욕은 같지만 추구하는 바는 서로 달라 보여 눈길을 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구사옥 자리에 새로 지은 신사옥에 대규모 미술관을 갖추고 개관 기념전으로 라파엘 로자노헤머(51)의 개인전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 ∼7월 23일)’전을 준비했다.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인 로자노헤머는 키네틱, 생체측정, VR, 나노기술, 사운드 등 다양한 기술 및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대규모 인터렉티브 미디어 전시로 유명하다. 그의 전시는 관람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소통의 마당이기도 하다.

전시에는 물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지난 26년간 선보인 미디어 아트 작품 총 29점이 나왔다. 아모레퍼시픽이 제작비를 후원한 신작만 5점이나 된다. 지난 3일 찾은 미술관 로비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지름 3m의 거대한 3D 원형 조각 ‘블루 선’이 인사하듯 반긴다. 관람객이 만지고,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들이 전구의 불빛으로, 영상 이미지로, 소리로 변하는 작품들은 일단 재미있다. 관람객을 찍은 CCTV 영상이 바로 전시장 벽에 투사되고, 기계가 잰 관람객의 심장박동이 깜깜한 전시장에 별처럼 반짝이는 식이다. 기혜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관장은 “미디어 아트이지만 그저 와, 환호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 체제에 대해 곱씹게 하는 측면이 있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올림픽로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들어선 롯데뮤지엄은 개관 두 번째 전시로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알렉스 카츠(92) 회고전(∼7월 23일)을 마련했다. 개관전 ‘댄 플래빈-위대한 빛'에 이은 2호 전시다. 카츠는 미국에서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에 광고 이미지를 차용해 구상미술을 한 대표적인 작가다. 코카콜라의 빨강 등 브랜드 이미지 색상을 배경의 넓은 색면으로 처리하는 ‘색면 초상화’로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특히 캘빈 클라인 시리즈는 아예 로고 자체를 작품에 박아 넣어 명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에 노골적으로 어필한다.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전시다.

개관전은 곧 미술관의 얼굴이다. 미술계는 개관전을 통해 두 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다. 롯데가 미술사 거장의 소비를 내세웠다면 아모레퍼시픽은 동시대 현대 미술 작가의 발굴에 좀 더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롯데뮤지엄에서 선보인 댄 플래빈과 알렉스 카츠 모두 1960∼70년대 미국 미술계를 풍미했고, 그들의 작품은 인상주의 이후 미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반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로자노헤머는 이름이 낯선 50대 초반의 작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인지도가 있고,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멕시코 대표 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이 동시대 중요작가를 발굴해 키우는 미술관급 전시를 지향하며, 삼성미술관 리움이 손을 놓은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리움 출신의 전승창 관장도 영입했다.

롯데뮤지엄의 경우 관장 없이 롯데문화재단 한광규 대표가 전시를 총괄한다. 공립미술관장 A씨는 “대중에게 외국의 명작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결국 미술계가 바라는 건 한국 작가에 대한 전시 기획과 후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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