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도시 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시선이 바로 이곳을 향하고 있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12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8일(현지시간)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전 세계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발걸음을 했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호주 출신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필두로 미국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중국 배우 장첸,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 브룬디 가수 카쟈 닌 등 9명의 심사위원단이 나란히 자리했다.
줄리안 무어, 이자벨 아자니, 판빙빙, 금성무 등 동서양을 불문한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빛냈다. 한국배우 중에선 강동원이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할리우드 영화 ‘쓰나미 LA’를 촬영 중인 그는 영화제 측으로부터 VIP 게스트 초청을 받아 개막식에 참석하게 됐다. 강동원의 칸영화제 공식 방문은 처음이다.
개막작 ‘에브리바디 노우즈’의 주연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리카도 다린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란의 거장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작품으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브리바디 노우즈’를 포함한 21편의 영화가 올해 경쟁부문에 올라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합한다. 한국영화 가운데는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버닝’이 진출했다.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주연한 이 영화는 세 명의 청춘들이 겪는 미스터리를 다룬다. 오는 16일 공식 상영이 예정돼 있다.
이 감독은 칸영화제에 앞서 진행된 국내 기자회견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세상을 향한 분노와 무력감을 품고 있지 않나. 그들의 감각과 정서로,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 ‘버닝’에 대해선 “뭔가에 열중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열정을 불태우기가 어렵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외신의 잇단 호평이 수상 전망을 한층 밝힌다. 미국 영화매체 버라이어티는 “칸이 아시아 최고 기대작을 선택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창동은 칸영화제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버닝’이 수상할 경우 이 감독은 ‘밀양’(2007·여우주연상) ‘시’(2010·각본상) 이후 세 번째 칸 트로피를 들게 된다.
아시아 영화의 약진이 눈에 띈다. 경쟁부문 초청작 21편 중 8편이 아시아 감독의 작품이다. 이창동을 비롯해 중국의 지아장커(‘애쉬 이즈 퓨어리스트 화이트’)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만비키 가족’)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쓰리 페이시즈’) 터키의 누리 빌게 제일란(‘더 와일드 피어 트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도 한국배우 유태오가 주연한 러시아 영화 ‘레토’를 주목할 만하다. 1980년대 러시아에서 활동한 고려인 3세 록가수 빅토르 최(1962∼1990)의 생애를 다룬 작품. 연출을 맡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극장 공금횡령 혐의로 가택 구금돼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1990년대 중반 북핵을 둘러싼 남북 간 첩보극이다. 최근 남북 관계가 화해 무드로 접어든 상황에 나온 북한 소재의 영화여서 주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은 11일 상영 일정에 맞춰 출국한다. 올해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은 오는 19일 열리는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