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저자의 ‘외국어 스펙’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익혔다고 하니 언어의 천재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심지어 한국에 머물던 1990년엔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웠는데, 같은 시기에 그는 ‘맹자’를 읽으며 한문을, 시조를 통해 중세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이 같은 이력의 주인공은 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57)다. 그는 88∼92년 고려대 영어교육과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2008∼2014년엔 서울대에서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외국어 전파담’은 그가 “한국의 독자들과 더 폭넓게 소통하고” 싶어서 모국어인 영어 대신에 한국어로 쓴 책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펴낸 교양서라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끄는데, 문장력도 보통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나 한국어의 변천사를 다룬 내용도 소상하게 실려 있다. 만약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십중팔구 국내 학자의 책이라고 넘겨짚을 것이다.
‘외국어 전파담’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류의 외국어 습득 역사를 다루고 있다. 외국어라는 렌즈를 통해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개관한 내용이다.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일별하고 있노라면 인류가 걸어온 길을 되짚게 된다. 얼마간 느슨한 구성을 띤 세계사 입문서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수많은 사료를 깁고 다듬어 완성한 노작이다.
이야기는 인류가 처음 외국어를 배운 게 언제인지 전하면서 시작된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주인공은 아카드인이었다. 기원전 1000년쯤에 아카드인이 만든 점토 서판(書板)엔 수메르인의 언어인 쐐기문자를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외국어 공부의 역사는 이렇듯 기원전부터 시작하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외국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외국인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질서가 국가 단위로 재편되고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19세기가 되자 무역 이민 여행 등 인적 교류가 확산되면서 외국어 구사 능력은 사회적 자본으로 자리매김했다.
저자가 ‘외국어 전파담’을 전하면서 비중 있게 소개하는 건 종교의 역할이다. 그는 “언어의 전파에 종교의 확산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며 “선교사들이 외국어 전파의 첨병이었다”고 적었다. 특이한 건 선교사의 모어가 선주민의 언어보다 높은 위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선 선주민의 언어가 서서히 힘을 잃다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제국주의나 민족주의가 외국어 전파에 미친 영향도 들려준다. 외국어 교수법(敎授法)의 변화상도 적혀 있다. 지구촌에 공동의 언어를 보급하자는 이상주의적 사상에 기반을 둔 에스페란토 운동을 소개한 내용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은 외국어라는 그라운드 위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사방치기를 하듯 뻗어나간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박람강기한 재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세계를 쥐락펴락한 두 개의 언어는 라틴어(서양)와 한자(동양)였지만 18세기가 되자 유럽의 보편어로 프랑스어가 부상했고 19세기부터는 영어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19세기엔 영국이, 20세기 이후엔 미국이 세계의 조종간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의 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저자는 영어의 위상이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영어가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 운영 체제의 역할”을 도맡고 있어서다.
서구 언어권에 기우뚱하게 치우친 서술이 많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이 책처럼 동서양을 오가며 균형을 잡으려고 애쓴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랗게 이어지는 외국어 전파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는 미래의 외국어 교육을 전망한 내용이다.
인공지능이 탁월한 통역자 역할을 맡게 될 텐데 굳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언어 교육의 목적은 ‘의사소통의 도구’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갈등을 완화하고 나아가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한 상호 문화의 이해와 개인의 교양 증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언어 교육의 목적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것은 마땅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역할이며, 그 점이야말로 이후 펼쳐질 모든 외국어 전파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