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인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을 동물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추수철 메뚜기 떼처럼 누군가가 일군 가치를 약탈하는 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꿀벌이 그렇듯 성실하게 일해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이런 꿀벌 같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보상을 안겨주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두루 살핀 신간이다. 영국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 대표이자 사회혁신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제프 멀건(57)이 썼다. 그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자가 규정한 자본주의는 “교환 가능한 가치를 가차 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정의를 내린 뒤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달 과정을 전하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논리 정연한 비판들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체제를 대신할 급진적 대안들까지 일별한다.
일견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주장이 이어지지만, 수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개괄하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파고든 내용이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길을 끄는 전망도 담겨 있다. 예컨대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에 주목하면서 21세기 중반이면 연구나 개발에 쏟아붓는 돈이 현재의 5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경제의 핵심 분야가 자동차 철강 마이크로칩 금융이 아니라 ‘녹색 산업’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예상도 주목할 만하다.
유장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끝에는 이런 글귀가 등장한다. 미래를 낙관하는 저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역사가 주는 긍정적인 교훈은 모든 것이 다 시도되고 난 다음에는 더 급진적인 선택지가 열린다는 점이다. 분명 메뚜기도 여전히 존재하며, 언제나 그랬듯 꿀벌은 수많은 싸움에서 수세에 몰려 있는 처지다. …하지만 이 관계는 역전될 수 있으며,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가 희망을 갖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