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의 비핵화에 초점… 1년 내 신속한 이행 촉구 “PVID 대신 CVID 목표”
北, 한반도 비핵화 주장 단계적·동시적 조치 요구
주한미군, 민감한 문제 일본인 납치도 거론될 듯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비핵화 이행 계획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면 회담은 성공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번 회담은 성사 자체가 성공이라는 평가도 있다. 오랜 적대관계를 보인 두 나라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마주앉는 것만으로도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 분위기가 연출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성사 과정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 당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 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과 함께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 회담을 제안했고,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두 차례나 평양으로 보내 이를 확인한 뒤 회담 개최 시기와 장소를 발표했다. 특히 미국은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하면서 최근 새롭게 제시한 ‘영구적인 핵 폐기(PVID)’라는 표현 대신 기존 용어인 ‘완전한 핵 폐기(CVID)’가 목표라고 밝혔다. 이런 변화는 향후 미국이 폐기를 요구할 무기의 대상을 축소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비핵화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에 차이가 적지 않다. 우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목표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잣대가 한반도 전체에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철회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회담 의제를 북한의 비핵화로 국한한다 하더라도 난관이 적지 않다. 북한은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 않는 것을 약속하는 소극적인 비핵화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ICBM뿐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폐기도 주문하고 있다. 핵탄두와 원심분리기는 미국에 인도하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등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원자력 발전 등 평화적 핵 이용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또 ICBM 개발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인공위성 개발 포기도 독촉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비핵화 조치를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신속히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완료하기 전에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 이행에 몇 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계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고, 이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맞춰 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이나 규모 축소를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북한이 핵 폐기를 먼저 이행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 간 국교 정상화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주한미군도 민감한 문제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향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위와 주둔 문제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간 주권적 결정 사항이지 북한과 협상할 일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한·미가 합의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도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 번 간곡하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아베 총리의 뜻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이 이 문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미국이 북한 내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북한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인 억류자 석방이 지연될 만큼 북한의 반발이 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지는 불분명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