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사업 벌이기 어려울 것” 정부 내부서 목소리 나와
당초 계획보다 규모 줄어들 듯 사드 배치 논리 흔들릴 수도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폐기를 발표하면서 남북의 군사 지형도가 급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핵 대응 예산을 5년간 3조5000억원 늘리겠다던 문재인정부의 공약도 당위성이 흐릿해졌다. 당장 내년도 국방 예산부터 북핵 대응과 관련한 예산을 증액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간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운용 예산 배분 논의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올해 편성한 국방 예산 43조2000억원 중 북핵 대응을 포함한 방위력 개선 예산은 13조5000억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10.8% 인상했다. 병력 운영(7.3%)이나 전력 유지(2.2%) 부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컸다. 지난해 북핵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인상폭이 커진 것이다. ‘한국형 3축 체계’로 불리는 킬 체인(Kill Chain·감시 및 타격 능력),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KMPR(대량 응징·보복 수행능력) 구축과 관련한 예산만도 2조원이 넘는다.
방위력 개선 예산의 증액은 문재인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을 위해 8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확정한 전 정부의 계획을 진화시켰다. 단순히 구축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기에 전력화할 수 있도록 중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포함해 정부가 2022년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힌 방위력 개선 예산은 3조5000억원 규모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독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예산 개요를 발표하며 “최우선적으로 증강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북한의 핵 폐기 움직임과 맞물려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는 23∼25일 사이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 방식으로 폐기하겠다고 전 세계에 공언했다.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2020년은 돼야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일이 2년이나 앞당겨졌다.
당장 내년도 국방 예산부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 내에서조차 국방 예산안에 신규 사업을 포함하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계획보다 국방 예산 증액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이미 지출 일정이 확정된 계속 예산은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 진행되는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논의에서도 북핵 폐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다. 미국은 연간 2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사드의 운용비용을 한국도 부담하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분담금 논의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긋는 상황이다. 양국의 줄다리기는 북한이 핵을 완전폐기하면 무의미해진다. 북핵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드 배치 논리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다만 한편에서는 남북 대치 상황이 해소되더라도 국방 예산 증액이나 사드 배치 자체는 다른 논의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자주권을 행사하려면 북핵과는 상관없이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국방의 경우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예산을 줄이면 반발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러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