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북·중 정상의 중국 다롄 회동에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측근인 박태성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 20여명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들은 첫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을 찾아 방중 목적이 경제 분야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방중한 북측 인사에 각 시·도 노동당 위원장들이 다수 포함돼 향후 북·중 간 지역 교류나 개혁개방을 위한 준비 차원의 방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은의 오른팔’로 불리는 박 부위원장은 ‘삼지연 8인방’의 한 명으로 장성택 숙청에 관여하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은 14일 오전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해 댜오위타이(釣魚臺)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서우두 공항에선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영접을 했다. 방중 인사에는 류명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김능오 노동당 평북위원장, 김수길 노동당 평양위원장 등 지역 시·도 위원장들이 포함됐다.
서우두 공항에는 오전 무장경찰이 대거 배치돼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했고, 인공기를 꽂은 의전차량과 중국 측 경호차량 등 12대가 댜오위타이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 방문단은 오후 2시쯤 댜오위타이를 나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의 중국과학원 문헌정보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직접 찾아 둘러봤던 곳이다. 방문단의 1차 목적이 중국식 경제발전을 배우는 데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따라서 북한이 향후 북·미 관계개선과 유엔 제재 해제를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위해 사전학습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평양을 비롯한 시·도 위원장들이 방문단에 포함된 점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미 회담이 조기에 성과를 내면 대외 경제교류가 봇물 터질 수 있어 각 시·도 위원장들도 중국식 개혁개방을 보고 미리 공부하자는 취지일 수 있다.
베이징 소식통은 “유엔 대북 제재 탓에 당장 북·중 간 물적 교류 확대는 어렵지만 향후 개혁개방 국면에서 어떻게 밑그림을 그리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는 차원의 방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역 간 교류 활성화 차원일 가능성도 있다. 당장 유엔 제재를 피해 교류할 부분을 찾고 북·중의 전통적 관계 복원을 위해 지역 간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함경북도는 중국 랴오닝성 방문단을 초청해 교류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지난 11∼12일 참관단을 이끌고 북측 압록강변과 신의주시를 둘러보고 양측 교류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김능오 평북위원장은 중국 측 참관단에게 평안북도가 기업 생산을 활성화하고 도내 새로운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 위원장과 회담했고,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관련 설명을 위한 방중일 가능성도 있다. 한 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을 설명하는 차원이라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더 높은 급의 인사가 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