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북도 미도 선택한 ‘화해의 땅’ 싱가포르… 어떻게 ‘중립국’ 됐나



지역 협력 통한 안보·번영 도모… 분쟁해결 위해 국제사회서 역할도
매년 개도국 80여곳서 행정 배워가 北과 1975년 수교… 상주 공관 개설
리콴유 일가가 사실상 쥐락펴락… 세계서 치안유지 가장 잘된 국가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외교적 중립지대다. 미국 백악관은 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정하며 “북한과 미국 정상 모두에게 안전하고 중립적”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정학적 요지에 위치한,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는 어떻게 중립국의 위치를 확보하게 됐을까.

식민지배 역사에서 배운 안보의 중요성

싱가포르의 기본적인 외교 노선은 지역 협력을 통한 안보 강화와 경제적 번영이다. 싱가포르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으로부터 그럴 필요성을 배웠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지에 위치해 있지만 주변 강국에 비해 인구와 자원이 절대 부족하다. 인종·종교적 구성도 복잡해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군사 협력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자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역사회의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러자면 주변 지역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외교가 중립성을 띠어야 하는 이유다. 국제사회에 신뢰를 주는 외교 정책과 방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우선적으로 인접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력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활동이다. 싱가포르는 아세안 핵심 국가로서 지역사회 발전을 이끄는 데 앞장서고 있다.

더불어 싱가포르는 유엔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국제 법규와 질서 유지, 분쟁 해결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도 앞장선다. 1992년 창설된 싱가포르 협력 프로그램(Singapore Co-operation Programme)을 통해 6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에 꾸준히 기술 원조를 해 왔으며, 매년 개발도상국 80여곳에서 공무원들이 방문해 싱가포르의 행정 체계를 배우기도 한다.

북한과의 우호 관계도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외교 노선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이미 68년 1월에 주싱가포르 통상대표부를 설치하고 이를 69년 12월 총영사관으로 승격시켰다. 75년 8월 싱가포르와 북한이 수교하면서 상주 공관이 개설됐다. 북한대사관이 있고, 신변안전이 보장되는 국가라는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휴가차 찾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는 2012년 신병 치료차 싱가포르에 머물렀다.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는 2015년 3월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총리가 사망했을 때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시위 없는 국가’ 싱가포르의 안정성

싱가포르는 현재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국가로 꼽힌다. 의회는 영국 의회제를 모델로 한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55년 제정된 렌들헌법(Rendel Constitution)에 따라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는 법률안과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고 주요 국정을 논의한다. 행정 수반은 총리지만 대통령도 내각을 견제할 수 있고 대법원장, 검찰총장, 군 참모총장, 경찰청장 등 주요 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정치적 안정성에는 리콴유의 장기 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싱가포르는 리콴유 일가의 손아귀에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경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일궈놨고 타계할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현재 총리는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이다. 84년 32세의 나이에 국무장관에 오른 리 총리는 2004년 총리직을 맡았다. 리 총리의 부인 호칭 여사는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다. 민주주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길지 않다. 싱가포르는 91년부터 직선제를 도입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해 왔다. 다인종 국가라는 특성을 반영해 지난 다섯 차례의 임기 동안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소수인종 그룹에 차기 대통령 후보를 단독으로 추천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한다. 현재 대통령은 말레이시아계이자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할리마 야콥이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치안 유지가 가장 잘 돼 있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 BBC방송은 “싱가포르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현지법과 안정성, 그리고 안전에 대한 자부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실시한 ‘해외 거주자 의식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금융소득과 취업 기회, 삶의 질, 안전성, 가족 친화적 환경 등 주요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는 경제·환경·교육·인프라·안전 요소를 중심으로 전 세계 도시 460곳의 삶의 질을 평가한 결과 올해 싱가포르가 25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는 글로벌 기준으로 설계된 높은 수준의 국제학교 및 공립학교가 많아 교육 환경도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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