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북핵 6자회담 협상 일선에 나섰던 김계관(사진)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 의도를 뚜렷하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제1부상은 1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우리는 이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어떤 자인가를 명백히 밝힌 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 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김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발표한 것은 현재 북·미 대화 국면에서 쌓인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대화의 판 자체를 흔들지는 않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다음 달 12일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에 배석할 가능성이 높은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이나 이용호 외무상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이런 의도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 결국 파장은 줄이면서도 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과거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고, 베테랑 미국통인 김 제1부상을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제1부상이 이번 담화에서 ‘사이비 우국지사’로 맹비난한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1호 경계대상’이다. 볼턴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과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내면서 대북 강경책을 주도했고, 이번에도 비핵화 수위에 대해 연일 강경 발언을 하고 있다.
김 제1부상은 1998년부터 2010년까지 12년간 외무성 부상을 지내며 대미 외교, 북핵 협상 등을 담당했다. 2010년 내각 부총리에 임명된 강석주 후임으로 제1부상이 됐다. 현재는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그는 2017년 4월 최고인민회의 참석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후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급물살을 탄 북·미 대화 국면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