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이창동이 청춘에게 고함… 의심하고 분노하라 [리뷰]

이창동 감독의 여섯 번째 연출작이자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버닝’의 한 장면. 오묘한 표정의 주인공 종수(유아인)가 텅 빈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파주에 위치한 종수의 집에는 날마다 북한의 대남 방송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요즘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암담한 미래만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 혹은 희망을 찾기 어렵다. 그들의 가슴속을 채운 건 무력감과 분노뿐. 영화 ‘버닝’은 그런 세상의 미스터리를 마주하고 있다.

영화는 한 청년의 지친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배달 일을 하는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 물건을 배달하러 들른 가게에서 우연히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반가움에 술자리를 함께하고,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여행을 간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간 종수는 뜻밖의 인물을 소개받는다. 여행지인 아프리카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비싼 외제차를 타고 고급 빌라에 사는 그에게 종수는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낀다. “한국에는 (위대한) 개츠비들이 너무 많아.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저런 사람들.”

어느 날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에 찾아온 벤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고백한다. 들판에 버려진 비닐하우스들을 주기적으로 하나씩 태운다는 것이다.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 종수는 매일 새벽 동네를 돌며 불 탄 비닐하우스가 없는지 살핀다. 그러다 난데없이 해미가 실종된다. 벤을 향한 종수의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인 ‘버닝’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준다. 장르적인 톤을 살려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거침없는 미스터리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는 후반부는 강렬하다. “이창동의 신세계가 열렸다”는 평가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창동스러운’ 지점 또한 여전하다.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과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에서 그의 인장이 선명히 드러난다. 스쳐지나간 대사와 상황들이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명백한 근거로 모아지는 부분에선 희열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이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각본을 새로 썼다.

주변 풍광과 자연 그대로를 활용한 미장센이 관객을 압도한다. 자연광 아래 비춰지는 사물 혹은 공간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는데, 특히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다. 지평선 노을이 주황색에서 붉은색, 보라색, 남색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순간에 해미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삶의 의미를 구하는 춤을 추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 가능성도 낙관적이다.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까지 노려볼 만하다는 게 영화계의 예상이다. 앞서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버닝’에 대해 “순수한 미장센으로서 영화의 역할을 다 하며 관객의 지적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호평한 바 있다. 17일 개봉. 147분, 청소년관람불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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