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페이지에 등장하는 챕터 ‘좌파 지식인의 타협과 투항’부터 살펴보자. 저자는 진보 진영의 거목인 신영복(1941∼2016)을 도마에 올린다. 신영복은 2008년 자신이 재직하던 성공회대에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진중권 유홍준 같은 진보 지식인이 대거 강단에 섰고, 삼성전자 고문이던 이학수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강좌를 들었다.
저자는 신영복이 개설한 이 커리큘럼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런데 왜 이게 문제라는 걸까. 자본가가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간(직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좋은 일 아닌가. 진보 진영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상상해보라. 진중권 같은 사람에게 인문학을 배우겠다고 ‘삼성 2인자’ 이학수 같은 사람이 앉아 있는 풍경을. 그 뜨악한 풍경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기업 인문학이다. …(좌파의 외연 확장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강의 이후 삼성의 조직문화에 일말의 변화라도 생겼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줄기차게 언급되는 ‘기업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저자가 규정한 기업 인문학은 “기업 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이다. 정통 인문학은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기업 인문학은 생존 출세 성공 같은 세속적 가치를 떠받들고 있다.
책을 펴낸 주인공은 문화평론가인 박민영씨다.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을 일컫는 ‘모두까기’라는 신조어가 떠오를 정도로 그의 칼날 같은 문장은 한국사회 곳곳을 파고든다. 수많은 명사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저자의 글이 강퍅하게 느껴져 불편할 수 있지만,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런 저자의 까칠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기업 인문학은 곧잘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아이폰 인문학’과 동의어처럼 쓰이곤 한다.
저자는 대안연구공동체 대표인 김종락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아이폰을 만들자는 인문학이 아니라 아이폰을 성찰하는 인문학이 절실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