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의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설은 조선 시대에 임금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先農壇)에서, 행사 후 만든 고깃국을 ‘선농탕’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당시는 소가 귀해 일반인들에게는 도축을 금할 때였다. 그래서 소 한 마리를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기 위해 탕을 끓여 거기에 밥을 말아 나눠 먹은 것이다. 처음에는 이를 선농탕이라 불렸으나 자음동화 현상으로 설농탕을 거쳐 설렁탕이 되었다. 이 설에 대한 반박도 있다. 조선 시대 책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를 정설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임금이 선농단에서 친경을 끝낸 뒤 잔치를 연 것은 사실이었다.
또 다른 설로는 몽고 고기죽 ‘술루’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몽고에서는 맹물에 소와 양을 삶은 음식을 ‘공탕(空湯)’이라 적고 몽고어로 ‘술루’라고 읽는다.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공탕은 곰탕으로, 그리고 술루는 술루탕을 거쳐 설렁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곰탕과 설렁탕은 같은 종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고기와 내장 등 비교적 고급 부위에 무를 넣고 끓인 것이 곰탕이고, 온갖 뼈와 잡고기를 모두 넣고 오래 고아낸 것이 설렁탕이다.
술루란 몽고제국의 정복활동 당시 기마대 음식으로 커다란 솥에 물과 곡물가루, 소와 양 등의 뼈와 고기를 넣고 끓인 고기죽이다. 빠른 기동력이 주특기인 몽고군은 소와 양 등을 끌고 다니다 이를 잡아 곡물가루와 같이 끓여 먹었다. 이러한 몽고군의 식습관이 몽고의 고려 침략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오랫동안 불교국가라서 도살법도 모르던 조선 사람들이 잔칫날 몽고식으로 고깃국을 끓여 먹었던 것 같다.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