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살아보세’서 ‘해양국가’까지… 정권 색깔 보여주는 ‘청와대 그림’

노무현정부 때 구입한 전혁림의 ‘통영항’. 청와대 제공
 
1969년 국전 초대작인 장리석의 ‘목장의 초하’. 청와대 제공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전을 찾은 시민들이 1966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강태성 작가의 조각 작품 ‘해율’ 등을 둘러보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청와대 소장 미술품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했다. 청와대는 국가미술재산을 국민과 공유하자는 취지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전을 갖고 있다.

전시장에는 196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출품작 등 청와대가 수집한 600여점 가운데 16점이 나왔다. 극히 일부이지만 청와대 소장품의 성격과 변천사를 읽기엔 충분하다.

주종을 이루는 것은 국전 당선작이나 초대작이다. 국전은 1949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 총 30회가 개최된 관전(官展)으로, 미술계 스타의 산실이었다. 개막식에는 당시 대통령이 참석했고, 전시가 끝나면 청와대가 일부 출품작을 구매했다.

수묵채색인 이영찬의 ‘풍악’(1973년), 유화인 손수택의 ‘7월의 계림’(1973)등 사실 기법으로 그린 풍경화들이 그렇게 구입됐다. 이채를 띠는 것은 원로화가 장리석의 유화 ‘목장의 초하(初夏)’다. 1969년 국전 초대작인데, 초원에서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유럽풍의 목가적 풍경이라 당시의 헐벗은 국토와 사뭇 차이가 있다. 때문에 산업화라는 국가 시책에 부응한 ‘민족기록화’ 범주에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낙농업이 본격화하며 점박이 젖소, 즉 홀스타인종이 대량으로 수입되던 때였다. 근대화 열망을 담은 ‘잘 살아보세’식 작품으로 볼 수 있다.

1970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미술사 책에 등장하는 김형근의 ‘과녁’도 나왔다. 미술비평가 김현숙씨는 “박정희정권 하에서 ‘한국적 민주주의’ ‘민족주의’ 등이 강조되는 가운데 국전에 애국과 전통을 강조하는 작품이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과녁’은 서구적인 모던함이 있으면서도 신라 화랑정신과 연결시켜 높이 평가받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국전 작품 구입을 두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상의 경우 해외여행 특전이 주어지는 등 시쳇말로 떡이 컸다”며 “국전에 당선되기 위해 여인 좌상 같은 이른바 ‘국전풍’이 유행하는 등 정부가 미술계의 자생적 흐름을 막은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당시 미술 애호 인구가 많지 않았고 상업 화랑도 제대로 없던 시대에 정부가 미술품을 구입함으로써 미술 시장을 후원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2006년에 구입한 전혁림 작 ‘통영항’은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가졌던 해양 국가에 대한 꿈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가로 6m 대작인 ‘통영항’은 작가 특유의 청색을 주조로 한 색면 구상회화 작품으로, 화면 왼쪽에 당시 조선 분야 세계 1위의 긍지를 담은 듯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보인다.

전시는 국전 출품작과 함께 미술품 구입의 중요한 계기가 된 1978년 영빈관 건립, 1991년 청와대 본관 완공 등 세 주제로 나눠 꾸며졌다. 영빈관을 장식한 사계절 산수가 한국의 명소와 명산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라면, 청와대 본관은 ‘통영항’을 비롯해 현대적 감각의 수묵화인 서세옥 작가의 ‘백두산 천지도’ 등이 걸려 독창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청와대는 전시를 계기로 소장품을 조사했으나 소장품 1호가 무엇인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했는지 등의 자료가 명확히 남아있지 않다고 밝혀 미술품 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청와대 등 부처별로 진행하던 미술품 구입은 201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정부미술은행에서 일괄 대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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