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폼페이오 첫 방북 때 北·美 ‘핵시설 리스트’ 교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 말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북·미 양측은 당시 북한 내 핵시설 리스트를 서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제공


美 파악한 위치 제시… 북측도 내부 자료 내놔
핵리스트는 검증 첫 단계… 비핵화 신뢰감 반영
체제안전 보장 ‘빅딜’ 틀어지자 北 역공 관측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월 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양측이 북한 내 주요 핵시설 위치가 담긴 리스트를 상호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자 국무장관 지명자였던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자체 파악한 북한 핵시설 자료를 제시했고, 이에 북측도 내부 자료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진행돼 왔다는 점을 의미한다.

외교 소식통은 17일 “폼페이오 장관은 한 달여 전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미 정보 당국이 파악한 북한의 핵심 핵시설 위치를 북한에 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도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 이를 크로스체크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3월 31일∼4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극비 방북은 그로부터 보름여 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폼페이오가 지난주 김정은을 만났다”고 밝히면서 알려졌다.

핵시설 공개는 비핵화 검증의 첫 단계다. 통상 핵 폐기 시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및 미사일 정보를 제출하는 ‘신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공신력 있는 사찰단이 이를 확인하는 ‘사찰’, 실제 폐기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검증’ 절차를 밟게 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측에 핵시설뿐 아니라 핵물질, 핵무기도 모두 포함하는 ‘원샷 사찰’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미가 일찌감치 핵시설 자료를 교환했다는 건 양측이 협상 상대로서 상당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다는 의미다. 이때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내세웠던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미 양국은 폼페이오 방북 이후 정상회담을 공식화했다.

북한은 이후 비핵화 의지를 입증할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4월 20일)에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발표했고, 4·27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했다. 지난 9일 폼페이오 장관의 2차 방북 직후엔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이렇듯 비핵화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 반면 이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보장 논의는 더딘 상황이 북한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에서 비핵화 쪽으로만 무게가 쏠리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핵무기 반출, 생화학무기 폐기, 핵 기술자 해외 이주 등을 언급하며 비핵화 기준을 점점 높였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의 핵 검증 요구가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를 넘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는 최근 북한이 중대한 선제 조치를 취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등 보상을 제공하는 데까지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핵화 전 보상은 없다’는 미국과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한 북한 입장을 절충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도 볼턴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계속 언급하자 그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노용택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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