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가득 검은 새 한 마리가 그려졌다. 새의 머리는 사람이고, 양 날개엔 물고기가 얹혀져 있다. 무심한 듯한 표정의 ‘인간 새’는 우리를 지긋이 응시한다. 천연덕스러우면서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그린 이는 노은님이다. 독일서 작업하는 그는 사람을 새로, 새는 물고기로, 물고기는 나뭇잎으로 거침없이 바꿔버린다. 이런 형태가 등장했다가는 곧바로 다른 형상으로 변환되고, 그림의 앞뒷면과 위아래도 수시로 바뀐다. 상상에 경계가 없고, 표현에 거침이 없다.
노은님은 여러모로 독보적인 작가다. 우선 작품이 그렇다. 종이 위에 검은 물감으로 쓱쓱 그려낸 그림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그림이다. 과감한 생략으로 자연의 생명체와 인간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붓으로 그린 즉흥시’다. 독일의 표현주의에 동양의 존재론이 버무려져 강렬하면서도 초월적이다. 그는 “다 버려라/ 잘난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미운 것도/ 좋은 것도”라고 읊조리며, 집착을 버릴 때 마음이 맑아진다고 노래한다.
노은님은 인생스토리 또한 독보적이다. 파독간호사로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린 그림이 우연히 알려지며 장학금을 받고 국립 함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역량 있는 화가로, 교육자로 독일 미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정은 더없이 드라마틱하다. 그의 명징한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독일 미헬슈타트의 오덴발트미술관은 내년 초 영구전시관을 개관한다. 한국 작가가 해외 지자체로부터 전시관을 헌정 받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젊은 시절 늘 ‘벌 받는 사람’처럼 위축된 채 신산스러운 삶을 감내해야 했던 그는 이제 둥글고 따뜻한 그림으로 우리를 위무하고 있다.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그림이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