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한국적 정서로” 소리없이 대상 받은 애니 ‘반도에…’

이용선 감독은 19일 “애니 영화를 즐기는 인구를 늘리는데 제 작품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기작은 웹툰으로 먼저 공개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용선 감독 제공


세계무대서 인정받은 이용선 감독, 4600만원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 장편 ‘반도에 살어리랏다’ 대박
‘애니 필름 2018’에서 대상 받아


최근 국제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대상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장편 애니메이션 ‘반도에 살어리랏다’가 체코에서 열린 ‘애니 필름 2018’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5000만원이 안 되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이용선(32) 감독을 1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 감독은 “뛰어난 경쟁작들이 많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으니 ‘차기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제대로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영화제에는 아카데미상 후보작이었던 ‘러빙 빈센트’와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인 ‘몬스터 파크’ 등이 함께 초청됐었다.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을 담아냈다. 주인공 오준구는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로로 빗어 넘긴 40대 남자다. 배우를 꿈꾸면서도 대학 시간강사 생활과 전세살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이다. 그에게 느닷없이 양자택일의 순간이 찾아온다. 꿈을 이룰 기회와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기회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

한국의 현실을 투박한 그림에 실어 블랙코미디로 풍자한 작품인데 의외로 세계무대에서 먹혔다. 그는 “영화제에서는 뛰어난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내용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스토리텔링을 깊이 있게 들어간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영화에 들어간 돈은 총 4600만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3300만원을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자비를 보탰다. 30분짜리 단편을 만들 정도의 예산으로 85분짜리 장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획, 각본, 편집, 원화 캐릭터 설정, 스토리보드 등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했기에 가능했다. 이 감독의 모교인 청강문화산업대의 도움도 컸다. 학생들이 졸업작품 차원에서 참여했고 학교의 기술 환경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계산해 보니 1억5000만∼2억원 정도 들여야 만들어지는 작품인데 많은 도움을 받아 예산을 줄였다. 수정 작업을 하지않고 시간 순서대로 그린 것도 나름의 노하우였다”고 했다.

성인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소위 ‘잘되는’ 장르는 아니다. 이 작품도 지난 2월 국내에서 개봉해 관객 2000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숱하게 고민하면서도 그가 이 척박한 상황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애니메이션 장르의 파이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 새로운 시장 개척에 장편 애니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다. 차기작은 작품성 못잖게 대중성을 감안한 것으로 준비하고 있다. 대중의 공감까지 받으면 더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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