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폼페이오 불러 논의… 21∼24일 헤리티지·상하원 비핵화 전략 설명 조율한 듯
국무부, 北 핵·미사일 넘기면 동시에 제재 완화 조치 시사
볼턴, 배제·건재 의견 분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리비아 방식은 아니다”라고 밝힌 뒤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입지가 줄어들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볼턴 보좌관과의 면담을 취소하는 대신 폼페이오 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렀다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 힐이 보도했다. 1분 안에 달려올 수 있는 볼턴 보좌관 대신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폼페이오 장관을 집무실로 부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모델로 리비아 방식은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 다음 날이었다.

이에 대해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일상적인 회의”라며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면담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더 힐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21일 미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에서 ‘이란 핵 합의 파기 이후 전략’을 주제로 연설한다. 오는 23일에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 24일에는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각각 출석해 국무부의 주요 현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전략에 대한 언급도 예상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민감한 시기에 북한과 관련된 자신의 공개 발언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를 미리 보고하고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볼턴 보좌관과 달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의 안전과 경제적 지원 등 비핵화 대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두 측근의 입장이 엇갈리자 폼페이오 장관의 손을 들었다.

이런 가운데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대행은 지난 15일 일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착수금(down payment)을 크게 내면 동시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북한이 일부 핵무기와 미사일을 초기에 신속하게 넘겨주면 미국이 제재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단계적 비핵화와 이에 따른 단계적 보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조치’ 주장을 반대해 왔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까지 모두 폐기하기 전에 제재 완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일각에서는 볼턴 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역할에서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볼턴 보좌관이 호락호락 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보수 성향 매체인 WSJ는 18일자 사설에서 “리비아 방식을 주장한 볼턴이 옳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WSJ는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몰락에 영향을 받아 핵무기 포기를 결정한 것은 2003년이며,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것은 ‘아랍의 봄’이 리비아를 휩쓴 2011년”이라며 “리비아 방식은 카다피 정권의 몰락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 주간지 베니티베어는 “백악관은 ‘볼턴이 너무 나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를 잘 아는 외교관들은 볼턴이 매우 전략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며, 실언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볼턴 보좌관의 건재를 예상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