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체벌 흔한 프랑스, ‘금지 공간’ 만들어 변화 시도

프랑스 파리의 ‘체벌 프리존’ 카페 조이드에서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체벌을 가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카페 조이드에서 어른들이 자녀 훈육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2부> 해외 사례: 해외에서의 훈육과 학대 경계선
① ‘체벌프리존’ 변하는 프랑스

② 심리적 학대 해결 나선 일본
③ 몽골의 ‘긍정적 훈육’
④ 체벌금지법, 진통 겪는 캐나다
<3부> 대안을 찾아서


부모 85%가 훈육을 위해 아이를 때린 경험 있어
‘난폭한 충동 엄히 다스려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 인식
최근에는 체벌이 학대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 확산
학부모들 강연·토론회서 고민 털어놓고 상담 받아


지난달 29일 오후, 학부모 토론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카페. 수십 명의 어른들이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가운데 지루함을 참지 못한 한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아빠가 아이 등을 토닥거렸지만 아들은 “장난감을 달라”고 떼를 썼다. 아버지가 미안한 기색으로 “잠시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까요” 묻자 카페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여기 있고 싶어 하지 않나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합시다”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시끄럽다”는 핀잔은 없었다.

이곳 카페 조이드는 ‘체벌 프리존’이다. 놀이터나 슈퍼마켓에서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풍경이 흔한 프랑스에선 찾기 힘든 공간이다. 이곳에서 3년간 일해 왔다는 직원 조세프 해리엇(54)씨는 “프랑스 부모가 아이를 때릴 수 없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체벌 권하는 사회

체벌 프리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프랑스에 체벌이 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선 집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부모가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엉덩이를 때리다(fesser)’라는 표현이 별도로 존재하고 ‘뺨을 때리다(gifler)’란 뜻의 동사도 자녀를 대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체벌반대 시민단체 OVEO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부모 중 85%가 훈육을 위해 아이를 때린 경험이 있다. 절반은 아이가 2살이 되기 전에도 때렸다.

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아이를 때리는 이유는 뭘까. 수년간 이 문제를 다뤄온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기본적으로 ‘체벌 권하는 사회’라고 입을 모은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이 있고 그러지 않는 부모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올리비에 뮈렐 OVEO 대변인은 “프랑스인들은 아이의 난폭한 충동을 엄격히 다스려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민의식이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겐 무관용을 낳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바라 고세 양육상담사도 “프랑스에선 마음 편히 아이를 데려갈 곳이 없다”며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사람들이 (왜 따끔하게 혼내지 않는지)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보기 때문에 부모는 항상 마음을 졸여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 향한 관용도 길러야”

프랑스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체벌이 곧 학대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이 퍼지면서 ‘체벌 반대’를 선언하는 부모도 늘고 있다. 2살 딸을 둔 제레미 시몬(32)씨는 “아직 한 번도 딸에게 폭력을 써본 적 없고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다”며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반이 점차 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체벌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다. 2016년 발의됐던 체벌금지법이 논란에 불씨를 당겼다. 프랑스 의회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헌법위원회가 무산시켰다. 훈육과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았고 체벌을 없앨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법 제정에는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리엇씨는 “나는 폭력에 반대하지만 체벌금지법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체벌금지법이 도입되면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체벌을 하는 가정은 입을 닫기 시작할 테고 이 주제에 대한 건전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국가가 체벌을 금지하기보다 체벌이 불필요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카페 조이드는 이런 변화의 중심지다. 이곳에서는 부모의 체벌만 금지되는 게 아니다. 아이가 울거나 소리 지를 때 제3자가 보내는 따가운 시선이나 핀잔도 허용되지 않는다. 누군가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면 카페 직원들이 나서서 제재한다.

고세 상담사는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잘못했을 때 사회가 부모에게 가하는 압박이 체벌이 만연한 주된 이유 중 하나”라며 “결국 중요한 건 아이와 부모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체벌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부모 교육이 필수적이라고도 했다. 카페 조이드에선 2∼3주에 한 번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연과 토론회가 열린다. 부모들은 이곳에서 “아이가 아빠를 무시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이 앞에서 감정 컨트롤이 힘들 때는 잠시 아이를 내보내도 되느냐” 등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다.

마리안 드 미리벨 양육상담사는 “프랑스의 뿌리 깊은 체벌 역사를 한순간에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모두 잘 안다”며 “부모에게 무조건 체벌은 안 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지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글·사진 이재연 최예슬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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