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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렌드] 폐 끼치기 싫어서… 일본 ‘절연사’ 씁쓸



친지와 연락끊고 소지품 없이 스스로 목숨 끊는 사례 늘어, “여유 없이 살다가 마지막까지 주변 배려하는 일본 사회 단면”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증가한다고 하면 가족, 친지 등 연고자가 없는 이들의 사망이 늘어난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음에도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라지려고 신원을 드러내는 소지품을 없앤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모든 인연을 끊으면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어서 NHK방송은 ‘절연사(絶緣死)’라고 표현했다.

일본에선 신원 불명 시신이 갈수록 늘어 지난해 도쿄 경시청에 ‘신원 불명 상담실’을 설치했다.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고 실종자 가족의 문의에 응하는 전담 조직이다. 이곳에 접수된 시신 정보는 지난 1년간 1000건이 넘는다. 대부분 자살자이며, 이 중 대다수가 사망 당시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아 신원이 확인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NHK는 지난해 11월 도쿄의 한 전철역에서 투신해 전동차에 치여 숨진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성은 외모와 옷차림에서 50, 60대로 추정될 뿐 소지품이 하나도 없어 신원을 알 수 없었다. 경찰은 시신 사진과 검시 정보를 토대로 정교한 초상화를 그린 뒤 이를 전국 실종자 8만명의 데이터와 일일이 대조했다. 2개월이 넘는 작업 끝에 여러 특징이 사망자와 일치하는 실종자 정보를 찾아냈다.

여성이 숨진 곳에서 200㎞나 떨어진 마을에 그의 동거인이 있었다. 경찰로부터 동거녀의 부음을 들은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정말 외로웠다. 지금은 머릿속이 새하얗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여성처럼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고 사라지려고 ‘절연사’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본 주오대 아마다 조스케 교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앞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최후로 의지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NHK는 서로가 여유 없는 상태로 살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도 주변을 배려해야 하는 현대사회의 쓸쓸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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