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시진핑 배후론’을 거론했다. 이번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지칭하며 북·중 간 과도한 밀착에 대한 불만 수위를 높였다. 실제로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는 등 중국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 모두발언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 주석과 두 번째 만난 다음에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별로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7∼8일 김 위원장의 2차 방중 이후 북한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시 주석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에도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는 발언 수위가 더 높았다. 그는 “시 주석은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역시 그처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또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 아무도 몰랐으며 그 이후에 다들 놀랐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시 주석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에 사전통보도 없이 김 위원장을 만나 모종의 조언을 했고, 이후 북한의 태도가 달라져 협상이 꼬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지난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북·미 정상회담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에게 “예년 수준의 훈련은 이해한다”고 했던 것과 배치된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모종의 회유를 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한 것은 시 주석이 늘 실속만 챙긴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해 큰 환대를 받았지만 실속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무역전쟁까지 불사하며 중국을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지난 19일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크게 줄인다’고 합의하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 강제 조항은 없었고 ‘연간 2000억 달러가량의 무역적자 축소’도 명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은 중국의 통신기기 제조업체 ZTE(중국명 중흥통신) 제재 완화를 약속했다. 결국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서둘러 무역전쟁을 봉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북한을 지렛대로 삼은 중국에 완패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중국과의 무역을 생각할 때 중국이 북한과의 평화에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무역협상을 타결했으니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을 지켜보겠다는 주문이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 이후 국경지역에서는 북한산 수산물 교역이 증가하는 등 중국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졌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랴오닝성 단둥의 한 수산물가게 상인은 조개를 보여주며 “북한산이다. 제재 대상이었지만 최근 들어오는 것이 쉬워졌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단둥의 북한 레스토랑 2곳도 최근 영업을 재개했다고 전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시진핑 배후론’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만 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는 역사적인 기회를 맞았으며 북·미 양국이 서로 마주보면서 가야 하고 각국의 우려를 균형 있게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