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1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가요계 관계자들은 10년 뒤 벌어질 지금의 상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미국의 음악시장을 뒤흔들고, 빌보드 차트 정상을 넘보게 될 것이라는 건 당시만 해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한 보이그룹이 세계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2012년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반짝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드롬이다.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20대 청년 7명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지난해에 이어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이들은 최근 발표한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의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FAKE LOVE)’ 무대를 선보였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시상식장은 일순간에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팬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무엇이 이들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일까. 방탄소년단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금의환향… “목표는 빌보드 정상”
방탄소년단은 2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새 음반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8일 발표한 신보에는 이별의 아픔을 절절하게 녹여낸 노래 11곡이 실려 있다.
앨범은 출시되자마자 어마어마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내 음원차트를 석권했으며, 65개국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사이트인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톱 200’에서는 수록곡이 전부 순위권에 랭크돼 화제가 됐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진은 “음반이 공개되던 날 미국에 있었는데, 새벽 시간이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팬들의 반응을 체크했다”고 말했다. 지민은 “팬들이 우리에게 준 사랑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가요계 안팎의 관심은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에서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빌보드 200’은 앨범 판매량과 스트리밍 실적 등을 토대로 순위를 매긴다. 싱글 차트인 ‘핫 100’과 함께 빌보드의 메인차트로 통한다. 빌보드는 지난 21일 방탄소년단의 신보가 다음 주 공개될 ‘빌보드 200’에서 2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슈가는 “빌보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설렌다”면서도 “하지만 순위에 너무 연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더인 RM은 “방탄소년단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분이 많은데, 저희들은 ‘지금을 즐기자’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RM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취재진이 팀의 목표를 ‘수치’로 특정해 달라고 요청하자 곧바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멤버들끼리 정한 목표는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이 겨루는 ‘핫 100’에서도 10위권에 들고 싶다”며 “언젠가는 ‘핫 100’에서도 정상에 서는 게 우리들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슈가는 “빌보드 정상도 차지하고 싶고, 그래미 어워즈 무대에도 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런 목표를 입 밖에 꺼내는 게 쉽지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입 밖에 꺼내버렸으니 목표를 향해서 뛰어가야 할 것 같다”며 해맑게 웃었다.
방탄소년단은 당분간 국내 활동에 주력하면서 월드 투어를 준비할 계획이다. 이들은 오는 8월 25∼26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6개국 10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연다.
무엇이 신드롬을 만들었나
방탄소년단의 시작은 미약했다. 2013년 6월 데뷔했을 때만 하더라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요계 안팎에서는 이 팀을 기대주로 꼽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데뷔 전부터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보이그룹이라는 소문이 있긴 했다”며 “특정 멤버가 부각되진 않았지만 멤버들이 골고루 인기를 얻으면서 서서히 인지도를 쌓아간 팀”이라고 설명했다.
돌풍이 시작된 건 2015년 발표한 미니음반 ‘화양연화 파트.2’부터였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이 내놓는 음반들은 ‘빌보드 200’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화양연화 파트.2’는 171위, 이듬해 발매된 음반 ‘윙스(WINGS)’는 26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사건’은 지난해 잇달아 벌어졌다. 이들은 5월에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9월에 발표한 ‘러브 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는 ‘빌보드 200’에서 7위를 차지했다. 11월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화려한 공연을 선보여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전문가들이 방탄소년단 신드롬을 분석할 때 이구동성 얘기하는 건 SNS를 통한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멤버들이 SNS를 통해 팬들과 교감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모습이 팀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세련된 음악과 또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도 빼놓을 수 없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트렌디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움’을 갖고 있다”며 “이것은 강렬한 사운드나 후렴구를 내세우는 여타 K팝 그룹과는 다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활약은 K팝의 위상과 세계의 음악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음악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는 “방탄소년단은 K팝이 ‘서브 컬처(하위 문화)’라는 인식을 바꿔놓았다”며 “이 팀을 통해 K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방탄소년단을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인, 나아가 아시아에 대해 가진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