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복숭아를 그린 정물화는 폴 세잔(1839∼1906)이 가장 유명하다. 세잔은 ‘사과로 서양미술사를 제패했다’고 평가될 정도로 탁월한 정물화 연작을 선보였다. 대상의 본질을 끈질기게 파고들며 평범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린 것. 그의 진지하고 분석적인 작업은 후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세잔은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야수파의 기수’ 앙리 마티스(1869∼1954) 또한 세잔을 흠모했다. 마티스는 세잔의 화풍을 도입해 한동안 짜임새 있는 구성을 시도했다. 부케와 과반(果盤)을 그린 이 정물화는 마티스 작품 치고는 대단히 차분하다. 아름다운 꽃다발과 과일 그릇이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식탁에서 빛을 발한다. 테이블 뒤의 대담한 병풍은 마티스의 개성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꽃과 과일은 섬세하게, 배경은 최대한 자유롭게 표현해 작가의 여타 작품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마티스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이 그림은 미국 텍사스 지역을 대표하는 패트론(후원자)이었던 마거릿 맥더모트 여사가 댈러스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맥더모트 여사는 남편인 유진 맥더모트(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공동창업주)와 함께 반 고흐의 풍경화, 마이욜의 청동조각 등 수많은 명작을 DMA에 기증했다. 부부는 수십년간 열정적으로 수집한 인상파, 후기인상파 미술 등 3100점의 컬렉션을 기꺼이 내놓았다. 게다가 여사는 지난 3일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자택에 걸어두고 음미했던 모네의 ‘수련’ 등 나머지 작품 일체도 미술관에 기증했다. 50년 넘게 댈러스 지역의 문화예술을 위해 헌신해온 패트론은 마지막 길 또한 아름다운 공헌으로 마무리했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