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시리’ 펜타곤서 개발… 美 R&D 비용 한국의 5배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기술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제성장은 물론 산업구조 및 사회·제 변화까지 이끌어낼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국가 차원에서 AI 경쟁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본격적인 AI 시대에 앞서 기술력과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기술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계획이다.

27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AI R&D에 투입하는 예산만 연간 11억 달러(약 1조1857억원)가 넘는다. 이는 2015년 기준으로 최근에는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난해 AI 연구·개발에 2344억원을 투입했다.

미국은 정부가 장기·선제적 투자를 한 뒤 민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가 AI 원천기술을 개발한 뒤 민간에 이양하고 혁신적 제품 서비스 상용화를 견인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 인수한 ‘시리’다. 미국 국방부는 2003∼2008년 2억 달러를 투자한 AI 개발 프로젝트 ‘CALO’에서 음성개인비서 연구 부문을 독립시켜 벤처기업 시리를 설립했다. 애플은 시리를 2억 달러에 인수했고 2011년부터 스마트폰 아이폰에 음성인식 AI 비서를 탑재했다.

또 미국은 개방·경쟁형 기술개발 방식을 도입해 운용 중이다. 정부가 과제를 제시하면 민간은 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한다. 2012년부터 올해 2월까지 자율주행차,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 개발 등 총 819개의 과제를 이 방법으로 해결했다.

AI 기술력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선행투자를 집행해 AI 핵심기술 확보와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민·관 협력으로 ‘차세대 AI발전계획위원회’를 설립하고 3년간 무려 1000억 위안(16조89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올해 4월에는 인력 양성을 위해서 ‘중국 대학 AI 인재 국제육성계획’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됐다. 미국 대학과 공동으로 인력을 양성한다는 방안도 담겼다.

중국은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했다. 이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인력양성을 추진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2030년까지 1조 위안 시장 규모의 AI 핵심산업, 10조 위안의 연관 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중국은 또 ‘AI 선도기업’을 지정해 특화플랫폼을 육성하고 있다. 바이두는 자율주행차, 텐센트는 의료헬스, 알리바바는 스마트시티, 아이플라이텍은 음성인식 플랫폼 육성에 주력하는 식이다.

AI 기술력 확보 과정에서 융합을 강조하는 것이 중국의 특징이다. 2020년까지 AI를 적용하는 제품의 범위를 커넥티드카와 로봇, 드론, 의료영상 진단시스템, 영상식별, 음성인식·번역, 가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스마트 센서 제품 개발, 신경망 칩 양산, 개방형 플랫폼 구축 등 AI 전반의 핵심기술력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저성장 고령화 현상 극복을 위한 혁신의 수단으로 AI 기술력을 꼽고 있다. 이에 최고 수준의 국내외 AI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거점을 마련하고, 개방형 R&D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의 AI 연구거점은 산·학·연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개방형 R&D 플랫폼을 통해서는 195억엔(1920억원)을 투자해 데이터 기반의 AI 클라우드 인프라를 올해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클라우드는 데이터를 중앙컴퓨터에 저장해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프랑스는 AI 기술을 국가 전반의 혁신을 이끌 도구로 인식하고 연구허브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AI 선두국가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까지 15억 유로(1조899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기초연구 역량과 인재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프랑스는 대학·연구기관 기준으로 세계 최고 규모의 AI 연구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국립과학연구원(CNRS) 등에서 5만명 이상이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같은 조건에 이끌린 IT기업들은 프랑스에 잇따라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3년 프랑스에 AI 연구소를 열었고, 최근에는 2022년까지 1000만 유로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들도 올해 프랑스에 AI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대규모 인력을 채용할 예정이다.

핀란드는 정부 주도로 자금을 쏟아 붓는 강대국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AI 기술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핵심기술력을 확보하기보다는 응용분야 시장을 선점한다는 목표다. 여기에는 우수한 스타트업 생태계와 성장잠재력이 활용되고 있다. 핀란드는 주요국 가운데 스타트업 수가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 엑센츄어는 지난해 AI 활용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 2위로 핀란드를 선정했다. 공공부문 디지털화와 높은 교육 수준이 강점으로 분석됐다.

최근 한국의 AI 기술 경쟁력 전망에는 잇따라 빨간 불이 켜졌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술 수준은 중국에도 역전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가 124명이 집단토론을 해 상대적 기술 수준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결과 미국의 AI 기술력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한국의 기술력은 78.1이었다. 중국은 1년 만에 10.1 포인트 오른 81.9를 기록해 처음 한국을 추월했고, 83.0인 일본도 위협하고 있다. 2016년엔 한국이 73.9, 중국이 71.8이었다.

이동통신, 소프트웨어(SW), 정보보호, 블록체인 등 12개 ICT 분야를 종합했을 때는 한국이 미국 대비 83.5로 82.5인 중국에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중국은 1년 만에 5.6 포인트 급성장해 조만간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감을 느낀 한국은 뒤늦게 4대 AI 강국 도약을 목표로 ‘AI R&D 전략’을 발표했다. 4차산업혁명위는 2022년까지 AI에 특화된 대학원 6곳을 신설하는 등 AI R&D에 5년간 총 2조2000억원을 투입해 인재 5000명을 양성한다는 청사진을 지난 15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ICT 산업이 골고루 발전해 있는 나라”라며 “인재를 집중적으로 키워 투입한다면 앞으로 AI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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