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서한 직접 구술 韓·日에 알리지 않고 발표
8시간 만에 北 김계관 담화… 트럼프 트윗 긍정 반응 이어져
美, 취소 직전 주미대사에 통보 “한·미 간 소통에 문제”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된 과정부터 25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환영하는 트윗을 내놓기까지 워싱턴과 한반도 주변 외교가는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정상회담 취소 서한을 직접 구술한 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에 알리지 말고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CNN 방송과 NBC 방송 등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의회 지도자들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북한이 선수 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서한은 이날 오전 9시43분쯤 북측에 전달됐고, 9시50분쯤 발표됐다고 NBC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결심한 것은 지난 23일 오후 8시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겨냥해 내놓은 담화가 계기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는 보고를 받고도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반응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고 CNN은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아침 회담 취소를 결정하는 서한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서한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구술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펜스 부통령과 전화로 협의했다.
이들이 어떤 의견을 내놓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평소 세 사람의 발언과 성향을 감안하면 갈렸을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자신을 겨냥한 비난 성명을 내놓은 이후부터 측근들에게 ‘정상회담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밤 그가 제출한 보고서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반면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하원 청문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재고를 요청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도 전격적이었다. 북한이 낌새를 차리고 회담을 걷어찰 우려가 있다고 보고, 서둘러 먼저 발표한 것이라고 NBC는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정상회담을 중재한 한국은 물론, 일본도 사전에 통보를 받지 못했다. 한국에 미리 알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한사코 말렸을 가능성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문 대통령과 만나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자고 합의한 뒤 이틀 만에 회담을 깼다.
한국이 사전에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는 미 언론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미국 정부가 회담 취소 발표 직전에 조윤제 주미대사에게 사실을 통보했고 조 대사가 발표 수분 전에 청와대에 알려왔다”고 해명했다. 이는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 직전에 통보받았다는 것으로 한·미 간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 8시간 만인 25일 오전에 북한이 김 제1부상을 통해 담화를 발표한 것도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이 심야 회의를 거쳐 아침 일찍 담화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북한의 담화를 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외교가에서는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특히 그가 트윗에 글을 올린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