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사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은 이르다, 이번에는 취소하자’고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의 미래’ 토론회에 참석해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배경을 분석했다. 문 특보는 “학자로서 보기에 의제 조율이 잘 안된 것 같다”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포함되고, 선 폐기 후 보상 방식으로 할지 등에 대해 북측과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 이 상태에서 회담을 했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는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회담 취소 이유로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의제 조율에 실패하면서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문 특보는 또 “미국과 북한 모두 메시지를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문 특보는 “다음 달 12일 대사(大事)를 앞두고 메시지를 관리해서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기싸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언술을 교환하면서 사태가 어려워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실패한 메시지로 북한의 김계관·최선희 담화와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인터뷰를 거론했다.
북·미 관계를 부동산 거래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리얼리티쇼 진행자였고 부동산 사업을 오래한 사람”이라면서 “부동산을 거래할 때 가격이 안 맞으면 명함을 주면서 ‘생각나면 전화하라’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 강경파인 네오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문 특보는 “전격적인 취소 결정의 배후에는 펜스나 볼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 전문가는 안 부르고 언론인만 부른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핵 전문가들이 의구심을 제기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향후 북·미 관계를 부정적으로 전망하지는 않았다. 문 특보는 “맥락이 좋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돌발적인 사태로 갈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이 송환됐고,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자발적으로 폐기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전체적인 상황이 좋다는 설명이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백악관에서 ‘잘될 것이다’ ‘곧 정상회담 열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여러 군데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며 “희망을 가지고 인내심을 갖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판 김성훈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