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은 작품으로 말해야지,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홍보를 위해)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에 하게 됐습니다(웃음).”
이창동(64)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노출시키는 데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탓이란다. 하지만 8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데다 그 작품으로 다섯 번째 칸영화제를 다녀온 그로서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살가운 해명으로 입을 열었다.
‘버닝’은 올해 칸영화제의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다.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에서 역대 최고 평점(3.8점·4점 만점)을 받은 데 이어 국제비평가연맹상까지 거머쥐며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최종 수상이 불발됐다.
이 감독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나도 심사를 해봐서 아는데, 매년 좋은 작품이 한두 개 떨어지게 돼 있더라. 그런 내막을 아는 나로서는 불안했다. 내게 그렇게 좋은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개봉 전부터 칸 수상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터라 상을 못 받으면서 흥행 동력까지 잃을 것 같아 아쉽다”면서 “한국영화계 전체로 봐도 많이 아쉬운 일이다. ‘버닝’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더라면 활력을 얻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국내 관객의 호불호가 갈린 데 대한 씁쓸함을 표하기도 했다. “모호함을 느끼게 하고자 했는데 관객들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각자 자신만의 서사대로 영화를 보고선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감독이 전하려던 ‘모호함’이란 무엇일까. “우리 세대 때는 세상에 답이 있었거든요. 사회 모순이 있어도 해결 가능하다고 믿었죠. 근데 지금은 그게 없어졌어요.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일종의 미스터리 아닐까요.”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당분간 영화를 (연출)하겠다는 의욕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버닝’이 남긴 숙제를 제 나름대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