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판문점 번개’… “南北, 친구처럼 만나야”



김정은, 전날 전격 제안… 사전 조율없이 즉석 성사
文, 눈에 띄는 리무진 대신 벤츠 타고 극비리 이동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6일 정상회담은 북측의 제안 하루 만에 성사됐다. 지난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일정과 의제, 동선 등 조율에 수개월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전례 없는 파격이다. 갑작스러운 만남을 의미하는 조어인 ‘번개’라는 표현을 붙여 ‘판문점 번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격의 없는 소통을 선호하는 두 정상은 앞으로도 이런 식의 ‘번개 만남’을 자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하루 뒤인 27일 기자회견에서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오랫동안 저는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상 간의 정례적인 만남과 직접 소통을 강조해 왔고, 그 뜻은 4·27 판문점 선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은 지난 25일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 접촉을 통해 이뤄졌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이라면서 격의 없는 소통을 제안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내부 논의를 거쳐 문 대통령에게 대화 제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 원장과 김 부위원장이 25일 남북 관계 발전과 북·미 정상회담 준비 등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정상회담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요청을 해왔다. 남북 실무진이 통화로 협의하는 것보다 (두 정상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전격적으로 회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회담 일정이 갑작스럽게 잡힌 탓에 준비 절차도 극비리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정상회담 때 탔던 검은색 벤츠 풀만 가드 리무진 대신 은색 벤츠 S클래스 세단을 타고 청와대에서 판문점으로 이동했다. 풀만 가드 리무진은 방탄 기능이 있고 차체도 일반 차량보다 훨씬 길어 쉽게 눈에 띈다. 벤츠 S클래스는 1차 정상회담 때 김정숙 여사가 판문점에 갈 때 이용한 차량이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이동하면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찰 사이드카 호위도 이번 판문점행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측에서도 비슷한 정황이 감지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김씨 일가의 ‘집사’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눈에 띄지 않았다. 김 부장은 김 위원장의 비서실 격인 서기실 수장으로, 김 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김씨 일가의 외부 일정을 밀착 수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26일 남북 정상이 회담하던 순간에 중국 방문을 마치고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회담 제안이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판단에 따라 이뤄졌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의 ‘톱다운’식 소통이 경색 국면 돌파에 상당히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남북 정상은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핫라인 통화를 통해 수시 협의를 가지면서 필요할 경우 긴급 회담도 종종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양 정상은 이번에 회담이 필요에 따라 신속하고 격식 없이 개최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서로 통신하거나 만나 격의 없이 소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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