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중 1명 자유·휴식 없어… 행복지수에 부합한 어린이 100명 중 1명꼴도 안돼
초등생, 학교 외 공부시간 중학생보다 많아 눈길
부모는 자녀가 실제보다 더 많이 자고 논다고 여겨
초등학교 6학년 기형(가명·12)이는 취미가 없다. 정확히는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다. 월요일 오후 2시30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수학학원으로 간다. 그 뒤엔 곧바로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마지막 논술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7시30분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숙제를 해야 한다. 기형이가 침대에 눕는 시간은 오후 11시. 이동 중 짬짬이, 잠들기 전 잠깐 휴대전화로 웹툰을 보는 게 낙이다.
기형이의 하루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1명은 하루 중 자유시간이나 휴식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7명꼴로 수면이 부족하고 2명 중 1명은 하루에 1분도 운동을 하지 못한다. 수면과 공부, 운동 등에서 균형 잡힌 일과를 보낸 아이들은 1%가 채 안 됐다. 국내 청소년들의 2016년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한 것은 어린이조차 ‘저녁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는 2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아동 행복생활지수’를 발표했다.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3학년, 고등학교 1∼2학년 학생 총 6428명과 보호자 5094명을 조사해 평소의 수면, 학습, 운동, 미디어 사용시간을 집계했다.
4가지 영역 모두의 권장 기준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는 아동은 100명 중 1명(0.9%) 수준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7.3%는 수면 권장 기준(초등생 9∼12시간, 중·고생 8∼10시간)만큼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1, 2학년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이 채 안 됐다.
학습시간 권장 기준을 충족하는 비율은 30.3%였다. 고등학생의 연간 학습시간은 2757시간으로 국내 성인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인 2069시간(2016년 OECD 자료)보다 길었다.
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생들의 학교 외 공부시간이 평균 3시간14분으로 중학생(2시간56분)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조사를 진행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등학생들의 방과후 예체능 관련 사교육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운동시간 권장 기준(전 연령대 하루 최소 1시간)을 충족하는 비율은 25.8%에 그쳤다. 미디어의 경우 62.2%가 권장 기준(전 연령대 1∼2시간)보다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하루 중 자유롭게 휴식하거나 노는 시간이 전혀 없는 어린이·청소년도 24.2%였다.
정 교수는 “하루에 1분 이상 휴식 또는 놀이시간을 갖는 학생 75.8%는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행복감이 높았다”며 “학습시간의 증가로 인한 수면, 운동 등 휴식시간 감소는 어린이·청소년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부모들은 자녀가 실제보다 적게 공부하며 더 많이 자고 논다고 여겼다. 초등생 자녀는 하루에 3시간 넘게 공부한다고 답했지만 부모는 2시간으로 생각하는 식이다. 부모는 자녀의 공부시간이 적을수록 우울하다고 대답했다. 정 교수는 “부모의 지나친 관여와 감정 때문에 자녀의 공부시간이 강제적으로 늘고 있지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대표는 “청소년들이 부모와 기성세대의 욕심 탓에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성찰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정서불안이나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