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집중분석한 아동학대 판결문 85건에 대해 민관 전문가들은 “정부가 땜질식 처방에만 급급했음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울산·칠곡 사건 등 아동학대가 사회적 공분을 낳을 때마다 법과 제도는 보완됐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훈육과 학대 간 경계를 정립하고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일보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아동학대 판례분석을 통한 현황과 개선방안 모색’ 간담회를 열었다. 국민일보와 함께 판결문을 분석한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김지현·김혜겸·박우근·안서연·최수영 변호사가 발제했다.
장 관장은 2014년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이 제정됐지만 아동학대 처벌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임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가정 내 학대는 상습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상습성을 인정한 경우가 거의 없었던 반면 보육교사 등 제3자의 학대는 상습성을 비교적 쉽게 인정했다”며 “학대 행위와 행위자 유형에 따른 처벌 기준, 상습성 인정 기준 등을 세부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변호사도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정서적 학대만으로 기소된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며 “가정 내 학대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인데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훈육과 학대 간 경계가 모호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박 변호사는 “2014년 개정된 아동복지법과 초·중등교육법, 영유아보육법이 신체적 폭행을 금지하고 있지만 재판부는 여전히 ‘훈육’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며 이를 유리한 양형 요소로 본다”며 “어떤 경우 훈육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통일된 기준도 없다”고 비판했다.
토론에 참여한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도 “정서적 학대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만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구속력이 없어 선언적 효과밖에 없다”며 “보건복지부나 법무부가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사 과정이나 사후관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층조사 시스템이 없어 훈육과 학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학대로 판명돼도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발 방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 텍사스주는 아동학대에 대한 합리적 의심 가능성이 있는 경우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아동이나 보호자 등 자료 수집 대상자 모두를 필수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즉시 개입하며 그렇지 않아도 지속적 관리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영주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은 “훈육 인정 기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헷갈려 하는 상황”이라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인호 복지부 아동학대대응팀장도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해 왔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정책 없이 땜질식 처방에 그쳤다”며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