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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교도소 빼닮은 학교 건물부터 바꿔라

유현준이 꿈꾸는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의 모습이다. 그는 커다란 학교 건물을 여러 개의 작은 건물로 쪼갤 것을 제안한다. “1학년 때는 삼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놀다가, 2학년이 되면 연못 있는 마당에서 놀고, 3학년이 되면 빨간색 경사 지붕이 있는 교실 앞마당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는다면, 전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국민만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을유문화사 제공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 김중혁의 단편 ‘C1+y=:[8]:’가 떠올랐다. 난수표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그 뜻은 간단하다. ‘C1+y’는 도시를 가리키는 영단어 ‘시티(city)’를 의미한다. ‘:[8]:’는 스케이트보드 모양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소설의 제목은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라고 읽을 수 있는데, 작품의 중간쯤에서는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며, …도시의 외곽에는 바다가 있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다가 문득 코끝으로 비린내가 훅 끼치는 순간 파도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유현준(49)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펴낸 ‘어디서 살 것인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저 글을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인간보다는 자동차 중심으로 도시가 정비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이웃과의 소통은 단절된 세태를 절감하게 만들어서다.

저자가 너무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건 사족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저자는 TV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2’(tvN)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수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필명을 날렸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제안들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필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학교와 사옥과 거리를, 그리고 여타 건물들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주문한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건축적으로 보면∼”이라는 문구로 운을 뗀 뒤 시작되는 이야기들이다. 예컨대 건축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가 “기적처럼 부흥한” 이유는 도시화 덕분이었다.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도시에는 과거엔 만날 수 없던 각 지방의 사람들이 모이게 됐고, 도시는 “생각의 융합을 만들어내는 용광로”로 거듭날 수 있었다.

건축적으로 보면 한국교회가 부흥한 이유도 색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부흥의 비결은 상가 교회였다. 미국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저비용으로 할 수 있는 ‘차고 창업’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듯 한국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상가 교회라는 선택지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이것은 한국교회 성장의 끌차 역할을 했다.

이처럼 “건축적으로 보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책의 가독성을 크게 끌어올린다. 건축적으로 보면 일본 근대화가 한국보다 빨랐던 건 다다미방 덕분이었다. 일본은 잦은 지진 탓에 한국처럼 구들장을 데우는 온돌 시스템을 채택할 수 없었다. 대신 다다미방에 화로를 두는 난방 체계를 택해야 했다. 비효율적이지만 무거운 온돌을 사용하지 않으니 2층 주택을 짓는 게 가능했다. 이것은 곧 “고밀화된 도시”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저자는 일본이 온돌을 고집했다면 “근대화도 우리보다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적었다.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지지만 핵심은 공동체 의식이 단단해지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거리나 건물의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예컨대 저자는 ‘네모난 대형 교사동+대형 운동장’ 형태를 띤 학교의 모습이 교도소를 빼닮았다면서 “우리는 12년 동안 아이들을 수감 상태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평생 양계장에서 키워놓고는 닭에게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라고 묻는다. “서울에 카페가 많은 건 시민들이 앉아서 쉴 곳이 없어서”라거나, “현대인들이 ‘SNS 단지’에 갇혀 바깥세상과 소통을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쓸데없이 변죽을 울리지도 않는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전하려는 메시지를 향해 나선형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듯이 우직하게 글을 뽑아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건축물이 그렇듯 문장 하나만 빼버려도 저자의 논리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견고한 교양서다. 건축학 관련 서적을 읽어본 적 없는 독자에겐 근사한 건축학 개론서 역할을 할 것이다. 조만간 치러질 지방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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