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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법비 대표하는 인간 김기춘”



책의 첫머리엔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79)의 인생 궤적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대비시킨 연표가 등장한다. 김기춘의 전성기와 현대사의 암흑기가 절묘하게 포개진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김기춘이 얼마나 문제적 인물인지도 확인하게 된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가 쓴 이 책에는 김기춘을 향한 악평이 한가득 담겨 있다. “악취가 폴폴 풍기는 인생” “법비(法匪·법을 악용해 도적질하는 무리)로 규탄되는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 “출세 지향 법조인들의 잘못된 인생 모델”…. 저자는 이런 평가를 뼈대로 세운 뒤에 이미 알려져 있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았던 김기춘의 인생 스토리를 하나씩 들려준다.

책에는 “김기춘의 삶 전반을 조명한 최초의 저작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적혀 있는데, 아예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서울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권력에 영합하며 출세가도를 달린 70대 노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알려졌다시피 김기춘은 1970년대엔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일조했고, 90년대에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박근혜정부에서 ‘왕실장’으로 불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저자는 각종 언론 보도와 관련 서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김기춘의 회고록 등에 실린 희귀한 내용들을 깁고 다듬어 이 책을 완성했다. 일각에서는 김기춘의 악행들을 거론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퍼뜨린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그랬듯 김기춘 역시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뿐”이라는 거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평가에 반기를 든다. 김기춘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수준을 뛰어넘어 극우 반공주의라는 이념에 따라 행동한 인물이라는 걸 거듭 강조한다.

“촛불과 함께 적폐 청산 요구가 타올랐다. 각 부문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오물을 씻어내고 나라다운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그 지향점은 김기춘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토양을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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