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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고양이 눈으로 인간 문명 응시한다

출판면 메인 베르베르. 열린책들 제공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암고양이 도미노를 키우는 애묘가(愛猫家)다. 그는 신작 ‘고양이’에서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과 소통을 그린다. 열린책들 제공


‘쥐가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고양이와 일대 전쟁을 벌이고, 위기에 처한 인간이 고양이와 연대하고, 고양이들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논하고….’ 곰곰 따져보면 어처구니없는 설정이다. 그런데 여기에 홀딱 빠져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또 킥킥거리게 된다. 이 정도 솜씨를 부리며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할 재간꾼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7)뿐이지 않을까. ‘개미’ ‘뇌’ ‘나무’ 등으로 유명한 베르베르는 2016년 교보문고가 집계한 작가별 10년간 누적 판매량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별칭을 보유하고 있다. 베르베르는 출세작 ‘개미’에서 이미 개미를 화자로 세워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했다. 신작 ‘고양이(Demain les chats)’는 그런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다.

이번 작품은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 문명을 바라본다. 암고양이 바스테트가 소설의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테러, 질병, 오염 등 인간이 겪고 있는 다양한 위기를 고양이 관점을 도입해 더 사실적이고 위협적인 상황으로 그려낸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아름다운 여성 나탈리와 살고 있는 ‘나’. ‘나’는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콧대 높은 고양이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천재 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피타고라스는 USB 단자를 이용해 인간의 모든 지식에 접근한다. ‘나’는 피타고라스로부터 인류와 고양이의 역사를 배운다. 하지만 테러가 빈발하던 파리는 내전으로 치닫고, 황폐화된 도시엔 페스트가 창궐한다. 이어 쥐 떼들이 도시를 점령한다. 고양이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고양이 군대’를 만들고 도시를 탈환하기로 한다. ‘나’와 피타고라스가 이 임무에 앞장선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지만 과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내 시중을 들어야 할 인간이 자기 생각만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야! 이럴 때마다 정이 떨어진다니까!” 고양이 바스테트가 주인을 향해 내뱉는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러나 나탈리의 남자친구가 바스테트의 새끼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장면이나 바스테트의 동거묘가 굶주린 사내들의 저녁 식사가 되는 대목에선 목덜미가 절로 뻣뻣해진다.

아마 ‘고양이 집사’(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열광할 것 같다. 고양이의 습관과 특징, 매력 묘사가 곳곳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소설 말미 추신에서 “고양이의 ‘가르릉’ 소리는 수면의 질을 높이고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유도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골절 치료에 도움을 준다”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피타고라스가 들려주는 고양이의 역사 강의가 다소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도 흥밋거리로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고양이’는 주인공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성장기로도 읽힌다. 바스테트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로 인간과 소통을 갈망한다. ‘나’는 온갖 일을 겪으며 “스스로에 대해 갖는 생각이 자신을 구성한다. 내가 믿는 것이 나”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인간과 함께하는 학교를 세우기로 한다. 전작 ‘제3인류’에서 지구와 인간의 공존을, ‘잠’에서 사람 간의 소통을 다룬 작가가 이번 책에선 인간과 동물의 내밀한 소통과 공존을 보여준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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