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 되살리자] “우리 기술력, 세상에 없는 무기 만들 수 있는 수준”

김세훈 국방과학연구소(ADD) 책임연구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06년부터 ADD에서 탄도미사일 개발 임무를 맡고 있는 김 연구원은 “한국의 기술력은 선진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며 “대한민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軍 제시 사거리·탄두 중량 맞춰 미사일 개념도 구상 탄도미사일 체계 설계 임무
미사일이 주요 타깃으로 삼는 표적의 특성 등 정밀 분석해 탄두의 중량과 종류 결정
“강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 탄도미사일은 최후의 보루” 기상 안 좋아 발사 연기 다반사


불꽃을 뿜으며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남해상 무인도를 향해 날아간다. 탄도미사일은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렸던 포물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탄도미사일 이동 속도와 위치를 의미하는 데이터가 컴퓨터 화면에 빠르게 표시된다. 미사일의 비행경로가 살짝만 틀어져도 표적을 맞힐 수 없다. 궤도 이탈이 커지면 안전을 위해 미사일을 공중에서 자폭시켜야 한다. 미사일이 경로를 벗어나 바다에 추락하면 잠수사가 배를 타고 낙하지점으로 가서 잔해를 수거한다. 연구원들은 잔해에 남은 오류 원인을 찾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한다. 미사일이 목표물에 명중하기까지 몇 분 동안은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계속 흘러내린다.

탄도미사일 개발

새로운 탄도미사일은 이런 시험발사 과정을 수차례 거듭한 뒤 완성된다. 탄도미사일 개발 임무를 맡고 있는 김세훈(41) 국방과학연구소(ADD)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기술력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며 탄도미사일 개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2006년 1월부터 ADD에서 일했다.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수없이 지켜보며 가슴을 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탄도미사일은 발사 후 추진기관의 연소가 끝나는 시점에 최대 속력을 얻는다. 김 연구원은 이때를 투수의 손끝에서 야구공이 떠나는 순간에 비유했다. 탄도미사일은 그 힘으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비행해 표적을 맞힐 수 있도록 설계된다. 탄도미사일은 수십 개의 정밀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각 구성품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 간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목표물 제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이 만들어진다.

김 연구원은 우리 군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탄도미사일의 전체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맡고 있다. ‘탄도미사일 체계 설계’라고 불리는 업무다. 탄도미사일 개발이 시작되면 김 연구원은 군이 제시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 등에 맞춰 미사일 개념도를 구상한다. 또 탄도미사일이 주요 타깃으로 삼는 표적의 특성을 분석한다. 표적 분석 결과에 따라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탄두의 중량과 종류가 결정된다. 김 연구원은 “탄두가 특정 표적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히 때리도록 설계되는 게 탄도미사일”이라고 말했다. 표적 맞춤형 제작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표적이 건물, 진지, 장갑차, 이동식발사대(TEL) 중 어떤 것인지에 따라 탄도미사일 설계 자체가 달라진다.

그는 “개념 설계가 잘못되면 수년의 시간과 상당한 국가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의 개념 설계가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미사일의 크기와 형상, 추진기관, 항법장치 등의 부품설계 작업이 시작된다. 이어 미사일 제작, 조립, 점검, 시험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 탄도미사일이 탄생한다.

김 연구원은 여러 비유를 들며 탄도미사일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자신이 어떤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었는지에 대해선 끝내 말하지 않았다. 국가기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세상에 없는 무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우리의 기술력은 이제 충분히 그런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단계”라고만 말했다.

시행착오는 필수

우리나라의 탄도미사일 개발 여건은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규정됐던 ‘사거리 800㎞, 탄두 중량 500㎏’ 제한은 지난해 풀렸다. 한·미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탄두 중량의 제한이 해제된 것이다. 한국은 이제 와서야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에 1∼2t짜리 탄두를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시험발사 여건 또한 잘 갖춰지지 못했다. 미국이나 호주는 넓은 국토를 갖고 있는 만큼 육지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수 있다. 한국은 충남 태안에 있는 ADD의 안흥종합시험장에서 바다를 향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최적의 탄도미사일 설계는 시험발사를 많이 해본 경험이 축적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은 시험발사를 자유롭게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시험발사를 할 때 사거리를 줄이기 위해 고각 발사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탄도미사일이 중국과 일본 해역으로 떨어져선 안 되기 때문에 정상 각도보다 다소 높게 시험발사를 한다. 시험발사 준비 과정 자체가 오래 걸린다. 배로 3∼4시간 이동해 무인도에 표적을 만들고 그 주변에 카메라 계측 장비를 설치한 뒤 어선 통제도 해야 한다. 기상이 좋지 않아 시험 발사가 취소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 연구원은 시험발사 경험을 축적하는 것 못지않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완성도 높은 미사일은 시험발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러 차례 시험발사에서 단 한 번의 시행착오 없이 완성된 탄도미사일은 안전성이야 높겠지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탄도미사일 성능의 한계점과 이를 토대로 만든 최적 설계치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미사일 기술은 수십 년 노하우를 쌓아왔다”며 “그렇기 때문에 시험평가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미사일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시험평가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머무르려고 한다면 기술 발전은 이뤄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험발사 과정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우주여행 꿈

김 연구원의 어릴 적 꿈은 우주여행이었다. 김 연구원은 초등학교 시절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태양의 크기와 온도, 행성의 위치 등을 확인해 공책에 정리했다. 공부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 잡지에 나오는 과학 상식을 공책에 메모해두기도 했다. 우주여행의 꿈은 부산과학고에 이어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김 연구원은 “우주여행을 하거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관성처럼 계속 커져왔다”며 “결국 지금 탄도미사일 연구를 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우주에 가봤으면 한다. 우주에서 유영을 하며 지구를 한 번 바라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우주여행과 탄도미사일 개발은 좀 생뚱맞은 조합이다. 김 연구원은 이런 질문에 대뜸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 얘기를 꺼냈다. 브라운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를 개발했다. 브라운 박사는 독일이 패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 11호에 들어간 대형 로켓을 개발했다.

김 연구원은 “전략무기인 탄도미사일을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을 개발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나는 그와 반대로 우주여행을 꿈꾸다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개발용 로켓과 탄도미사일용 로켓을 만드는 기술은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탄도미사일은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전략무기이며 강대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를 누구도 함부로 못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게 연구자로서의 꿈”이라고 했다. 두 딸을 둔 김 연구원은 “딸들이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아빠가 나라를 지키는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김 연구원은 자신이 설계한 로켓 기술을 활용한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 연구원은 ADD 입사 1년 뒤인 2007년 ‘초음속 이젝터(Ejector·배출기)’를 개발해 항공우주 분야의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조정훈 학술상’을 수상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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