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개국 3만7000여개 매장 있지만 北 진출은 단순한 의미 넘어
개방 자극 촉매제 역할할지 주목
과거 공산권 국가들 몰락 시기 동시 진출하며 ‘개방 상징’ 위력
‘맥도날드 있는 곳 전쟁 없다’ 주장도
미국식 패스트푸드와 자본주의의 대명사 맥도날드가 평양에 상륙할 수 있을까. 북한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식 햄버거 체인의 영업 허가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미 NBC방송은 최근 미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미국 햄버거 체인의 북한 내 영업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2일(현지시간) 북한이 한때 맥도날드의 북한 진출 승인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맥도날드의 평양 진출은 단순히 이 회사의 해외 매장이 하나 더 늘어나는 차원의 의미를 넘어선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120개국에서 3만724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맥도날드가 북한의 개방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지에 쏠려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평양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 미국 문화에 대한 호감이 생기면서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맥도날드 효과는 과거 공산국가들이 자본주의 요소를 받아들이고 문호를 개방하던 초기에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했다. 1990년대에 이 브랜드가 소련과 중국에 진출했을 때는 그 자체가 화제였다. 모스크바에서 맥도날드 매장이 처음 문을 열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햄버거 하나를 사 먹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중국의 민속학자 옌윈샹은 “당시 베이징 시민들에게 맥도날드는 미국적인 것과 현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공산권 몰락과 맥도날드의 해외 진출이 거의 같은 시기에 확산되자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맥도날드가 영업 중인 국가 간에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맥도날드 영업 국가 간에도 전쟁이 발발하는 사례가 발생해 프리드먼의 이론이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맥도날드 햄버거의 확산과 전쟁 위험 감소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분명 흥미로운 관찰이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두 햄버거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 스위스 유학을 한 적 있는 김 위원장은 이미 서구식 햄버거 맛에 익숙하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고려항공으로 햄버거를 평양으로 공수해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었다.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평양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두 정상의 식사 테이블에 햄버거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먹는 장면은 북·미 관계 개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NBC방송은 김 위원장이 미국식 햄버거 매장을 허가하려는 것은 북·미 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기대와 전망이 엇갈린다.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맥도날드 햄버거가 북한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윌슨센터의 케일라 오르타 연구원은 “북한에서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이 문을 연다면 미국 문화외교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그런 날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