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스스로 절대자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김일성으로 통한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건 체제 안전이다. 가난을 연상시키는 어휘를 조심하고, 인내하라.”
북한을 상대로 핵 협상을 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협상의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선 이들은 북한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등 대미 협상 경험이 20년 이상인 노련한 외교관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결코 만만히 봐서 안 된다고 충고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외교 경험은 일천하지만 핵 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 대통령보다 지식이 풍부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비핵화 내용과 방법을 놓고 토론을 벌이면 트럼프 대통령이 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두 차례 그를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김 위원장이 핵 문제에 관한 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달변을 쏟아냈다고 말했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려면 북한의 개발 동기를 알아야 한다”며 “북한이 가장 원하는 건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체제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에서 김씨 가문을 신격화하고 있어 김 위원장이 스스로 자신을 절대자라고 생각한다는 걸 염두에 두라고 조언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국장도 “북한 협상가들의 세계관은 김일성주의와 제국주의의 대결로 압축된다”며 “모든 건 김일성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유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역으로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긴 김일성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도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전 미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행정부에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며 “동결은 수개월에서 1년, 감축은 2년에서 5년, 폐기는 5∼10년 혹은 15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북한의 주장 중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며 “대화 가운데 북한의 가난을 연상시키는 어휘는 자제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