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달리고 번개가 치는 듯하니 보던 것이 금방 지나가 거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민영환의 세계일주기 '해천추범' 중)
조선의 근대화라는 관제를 안고 있던 젊은 관료 민영환은 '신문물' 기차를 처음 탄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시대 기차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며 가장 빠르게 세계와 연결되는 고리였다.
서울∼신의주 간 경의선 운행은 1906년 시작됐다. 1911년 압록강철교가 완공되면서 경의선은 만주를 걸쳐 시베리아까지 뻗어가게 됐다. 비로소 세계와 한국이 연결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많은 동포들이 피 흘려가며 놓은 철로였다. 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연결고리가 한국전쟁중인 1953년에 끊기고 말았다.
이런 기차가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평화와 번영'으로 압축되는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은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합의가 이행된다면 동해선과 경의선을 통해 사람과 물류가 유럽까지 기차로 갈 수 있게 된다. 반도지만 섬처럼 고립되었던 우리나라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동해선이 복원되면 부산에서 북한을 걸쳐 러시아까지 연결된다. 이는 물류 운송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다. 현재 배로는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30일이 걸리지만 철도를 이용하면 그 절반인 14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운송거리도 1만2000㎞가량 줄어든다.
경의선도 다르지 않다. 인천에서 평안남도 남포 기준으로 컨테이너 1개를 운송하는 비용이 바닷길로는 800달러가 들지만 철도로는 200달러면 충분하다. 운송비 75%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 철로 복원 효과는 수송시간 단축과 운송비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자원 수송로를 확보해 자원개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물류사업을 연계한 다양한 남북 간 협력사업 발굴이 가능하다. 끊어진 동맥이 다시 연결돼 피가 돌듯 남북 철도 연결은 남북 공동 번영의 숨을 불어넣을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경원선 연천 신탄리역 철도 중단점에 세워진 이 팻말이 '철마는 달리고 있다'로 바뀌는 날을 기대해본다.
사진·글=김지훈 윤성호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