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동청 원장의 무비톡’은 정신과 의사인 정동청 원장이 영화와 드라마를 정신의학적 관점을 가미해 기술하는 칼럼입니다. 첫 번째 글은 마블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입니다.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앞선 마블 영화들에서 따로 전개되던 이야기들이 이번에는 한 곳에 모여 응축되다 폭발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마블의 주인공들은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아이언맨은 자아도취 성격에 충동적이며, 캡틴 아메리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해 주변 사람들과 자주 갈등을 겪는다. 강한 힘을 가진 토르 역시 성급한 결정으로 후회할 때가 많으며, 배너 박사는 분노에 휩싸이면 헐크로 변하면서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또한 마블 영화들이 실제로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는 점도 흥행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외면은 선악의 대결에 기대지만, 이면에는 가족의 사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아이언맨은 아버지의 업적에 눌려 방황하던 인물이며 그의 돌출 행동은 이런 내적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그는 어벤져스 동료들과 만나며 성숙해지고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토르는 이복동생 로키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신뢰를 쌓아간다.
그런가하면 앤트맨은 이혼으로 따로 살게 된 딸에게 아빠로서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히로인인 스타로드는 부모없이 자란 탓에 모성애를 갈구한다. 그러다 자신을 키워준 해적 욘두에게 부정을 느끼고, 동료들을 통해 가족애를 찾는다.
이처럼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은 가족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거나 결핍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악당 타노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또 다른 흥행 히로인이다. 그는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없애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행동이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인구 증가가 종국에는 파멸로 치닫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목표를 삼은 것뿐이었다. 히어로들이 타노스를 저지하려고 하나 실패하고, 모든 인피니티 스톤을 손에 넣은 타노스는 자신의 끔찍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성공한다.
타노스의 신념은 일종의 ‘망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망상은 주변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결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설사 그릇된 신념을 가졌다고 해서 정신과적 치료의 대상은 아니다.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치료 필요성 여부의 판단이 중요하지,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정신과 의사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타노스는 전형적인 악인은 아니다. 입양 딸인 가모라를 향한 태도를 보면, 되레 자신의 의지가 약해질까 봐 인간적인 관계를 거부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론 타고난 악인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섬뜩하다. 어쩌면 영화가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누구나 어벤져스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누구든 타노스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정동청 원장 <서울청정신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