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의학교육으로는 4차산업혁명시대 맞춤의학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임인경 아주의대 생명과학교실 명예교수는 “하루 빨리 ‘의사 과학자(MD-phD)’ 양성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의학교육으로는 개인 맞춤형 의료로 진화하는 미래의학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안일한 의학교육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4차산업혁명시대의 선도자가 아닌 소비자 또는 관망자로 내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교수는 국내 분자·세포의학 분야 권위자이자 의학박사(MD)와 생화학분야 박사학위(phD)를 보유한 1세대 ‘의사 과학자’다. 지난해 정년을 맞아 올해부터 명예교수직을 맡았지만 여전히 연구와 학술교류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여자 의사가 드문 시절 임 교수는 더 드물다는 기초의학을 선택했다. 학교에서는 유일한 존재였다. 임 교수는 “내 시대에는 여자 의사가 드물었고 생화학과 의학전공자는 내가 거의 유일했다. 차별도 경쟁이 있을 때 이뤄지는 것인데 당시 우리학교 같은 전공자 중에서는 내가 가장 시니어급이었고 남학생도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고 회상했다.
그가 ‘의사 과학자 양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 1983년 임 교수는 한국의 코이카(KOICA)에 해당하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지원을 반아 연구자 신분으로 약 2년간 연구교류 차 일본 도쿄대학에 머물렀다. 당시 일본의 기초과학 수준은 김 교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임 교수는 “일본은 이미 1983년도에 지금의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 진단기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브레인을 모아 진단을 위한 히스토리를 만들도록 지원할 정도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높았다”며 “또 우리와 달리 구조적으로 의사과학자를 많이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의대 졸업자(MD)가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과학 분야 박사학위(phD)를 획득해야 한다.
임 교수의 주장처럼 우리 정부도 의사과학자 육성에 나선 전력이 있다. 그러나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단기간에 그쳐 아쉬움을 남긴다. 임 교수는 “국가과학자문위원회에 들어가고, 의사과학자를 어떻게 키울지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성과로 의과학자육성지원 프로그램이 실시됐지만 결국 중단됐다”며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 때 졸업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나라의 장래를 보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사 과학자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맞춤형 의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 의료가 질병의 증상과 임상결과를 중시했다면, 맞춤형 의료는 유전자나 바이오마커, 생활정보 등 개별적이고 다양한 정보에 주목한다. 이러한 정보를 질병의 진단과 치료, 예방 등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적인 지식이 기본 바탕이 돼야한다. 임 교수는 “기초과학을 모르고 단순히 증상에 따라 진단하는 의학교육으로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맞춤형 의료에 손도 댈 수 없다. 의학교육을 받았지만 환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지 못하는 까막눈인 것”이라며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기초과학을 강화한 교육을 일찍이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뒤쳐지지 않으려면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의 과학 분야 진출은 ‘미래 산업’과도 관련이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꽃이라 불리는 바이오산업과 헬스케어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의학도의 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임 교수는 의학지식과 과학지식을 두루 갖춘 의사과학자가 두 학문을 융합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임인경 교수는 “앞으로 미래 산업은 헬스케어와 바이오산업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의학과 과학적 지식을 두루 겸비한 국가 차원의 인재 브레인풀을 키워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