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공식 발표한 이후 열흘째 회담 준비 상황을 대내에 알리지 않고 있다. 미국 백악관이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하나씩 공개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의 숨고르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직 회담 성과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실무회담이 마무리되면 싱가포르로 향하기 전 북·미 정상회담 관련 메시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달 27일 5·26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처음 언급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은 꺼져가던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김 위원장의 요청으로 전격 개최됐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못 박고, 개최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 무산 직전까지 갔던 위기상황을 수습했다. 이후 북·미는 다양한 채널을 전방위적으로 가동해 의제·의전 협상을 진행했지만 정작 북한은 아무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6일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과 결과를 공개할 만큼 성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는 건 미국이 말하는 체제안전 보장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조약 형태로 만들어 의회 비준을 받을 것인지, 첫 만남에서부터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확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고 싶은 것 같다”고 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판문점 실무회담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는 건 이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대내적으로 공식화하긴 했지만 아직 실무회담이 진행 중이고 회담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미측과 의전 협상을 진행했던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 부장은 7일 평양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일가의 집사로 불리는 김 부장은 평양 도착 즉시 김 위원장에게 의전 조율 결과를 상세히 보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 담판을 앞두고 내부 기강도 다잡고 있다. 최근 군 수뇌부 교체 움직임도 그 일환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26일 북한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이 김정각에서 평양시당위원장인 김수길로 교체된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인민무력상과 총참모장 역시 교체설이 흘러나왔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군부 내 강경파를 온건파로 교체하는 등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고 교수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정리하고 군부 인사도 단행한 것을 보면 비핵화를 위한 내부 설득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