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사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려고 일부러 리비아 비핵화 모델을 언급해 북한을 자극했고,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5일(현지시간) CNN방송이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복수의 미 정부 소식통은 볼턴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자극할 목적으로 TV 인터뷰에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리비아 모델은 비핵화 이후 리비아 국가원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북한이 몹시 꺼리는 방식이다.
CNN은 “볼턴은 북한과의 대화가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에 대화의 전 과정을 날려버리려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볼턴이 북한을 불신해서인지, 미국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것으로 느껴서인지는 소식통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볼턴이 판을 깨려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볼턴의 발언은 실제 회담 좌초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 4월 말 폭스뉴스와 CBS방송 인터뷰에서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ABC방송에선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크리지는 2004년 리비아가 포기한 핵무기를 넘겨받아 보관 중인 곳이다.
볼턴의 발언과 이를 이어받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경고는 북한을 자극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공격적인 담화를 불렀다. 이는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로 이어졌다.
CNN은 볼턴의 이 같은 시도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적어도 현 시점에선 볼턴이 회담 준비 과정에서 제외돼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볼턴은 회담이 극적으로 재추진되는 과정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볼턴은 보이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해 김영철 면담에 볼턴이 배석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