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우리는 숲을 너무 적게 이용한다. 나무를 베라는 말이 아니다. …나무들 틈에 숨어서 당신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모험에 뛰어들라는 소리다. 그러자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꼭 걸어서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저 문장만 읽어도 이 책에 담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의 생태작가 페터 볼레벤(54)은 독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숲에는 진귀한 구경거리가 널려 있다고, 그러니 당장 운동화를 신고 숲으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저자의 이력부터 살펴야 한다. 숲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그가 펴낸 ‘나무 수업’(이마)은 세계 35개국에서 번역·출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이마)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더숲) 같은 책도 유명하다. 신비로운 숲의 생태계를 세세하게 들려주는 솜씨 덕분에 그의 이름 앞에는 ‘자연의 통역가’라거나 ‘최고의 숲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숲 사용 설명서’에서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버섯과 나무의 공생 관계를 다룬 챕터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버섯이라고 하면 스머프가 사는 집처럼 ‘갓+밑동’ 모양을 떠올리지만 “진짜 버섯은 그 아래로 실처럼 뻗은 균사체”다.
그런데 이 버섯이 나무들과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나무들은 땅속으로 기다랗게 뻗은 뿌리를 통해 곤충이 습격했다거나 가뭄이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잔뿌리가 가닿지 못한 나무끼리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이때 버섯 같은 균류가 전달자 역할을 맡는다. 학자들이 버섯 같은 균류를 “숲의 통신망”이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통신비 명목으로 버섯은 나무로부터 무엇을 얻어낼까. 나무는 자신이 생산하는 양분의 최대 3분의 1을 조력자인 버섯에 전달한다. 3분의 1이면 나무가 줄기를 만드는 데 투자하는 양과 비슷하니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이렇듯 놀라운 사례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어진다. ‘숲의 어머니’로 통하는 너도밤나무의 삶은 기가 막힐 정도로 신비롭다. 늙은 너도밤나무는 어린 나무들 위로 가지를 뻗어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자식들이 10년 동안 1m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너도밤나무는 왜 자식의 성장을 막으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가 장수하려면 유년기에 힘을 너무 많이 소모해선 안 된다. 어미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당 용액을 자식 나무에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건 마치 인간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과 비슷하다. 너도밤나무는 이웃한 나무가 허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식한테 그랬듯 부드러운 용액을 선물한다.
이 책은 생태계의 신비로움을 담은 교양서지만 실용서의 성격까지 띠고 있다. ‘숲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처럼 숲을 어떻게 즐길 수 있으며 숲에서 조심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도 들려주기 때문이다. 가령 저자는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숲에 쪼그리고 앉아 주변의 1㎡에 집중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숲 속의 소우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돋보기나 작은 모래 체를 구비한다면 더 좋다. “꼬마 생명체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존중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쯤 땅바닥을 내려다보거나 확대경을 비추어 보라. 상상 이상으로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머리를 감자마자 숲에 들어가면 모기가 우르르 달려들 테니 조심하라고, 홍개미 집 근처에 있을 때는 부지런히 제자리걸음이라도 걸으라고 당부한 내용도 등장한다. 숲을 이색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나뭇잎을 먹어 보라거나 냄새를 맡아 보라고 조언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전작들에 담겼던 내용이 다시 등장하거나 자국인 독일의 산림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런 부분은 책의 재미를 얼마간 떨어뜨리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까지 퇴색되는 건 아니다. 그는 “이 사용 설명서를 읽고 숲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나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숲으로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책에 실린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가 숲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숲이야말로 이 땅에 남은 그나마 온전한 형태의 마지막 생태계”니까 말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