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여행

‘신비의 섬’속살… 뽈뚜리지를 아시나요

경북 울릉도 뽈뚜리지에서 바라본 도동항 일대 모습. 오른쪽 봉우리 위 독도전망대부터 도동항, 행남등대, 내수전 일출 전망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왼쪽 봉우리에 염소굴이 있다.
 
저동항 너머로 그림처럼 떠있는 북저바위와 죽도.
 
저동항에서 석포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내수전 옛길.




경북 울릉도에 처음 가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차량을 이용해 해안도로를 따라 돌며 명소들을 돌아본다. 산행에 관심있는 여행객이라면 성인봉을 오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울릉도를 제대로 봤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속살처럼 곳곳에 숨겨놓은 아름다운 풍광이 부지기수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울릉도를 색다르게 즐겨보자.

울릉도 해안은 장대한 암벽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다. 장막을 친 바위 왕국이나 다름없다. 중세 시대 첨탑 높은 성을 연상케 한다. 주름치마를 곧추세운 듯한 암릉이 성인봉에서 출발해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해안가에 다다르면 급경사를 이루며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그런 암릉을 가로지르거나 암릉 사이 평평한 곳을 따라 길이 있다.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 뱃길이 막혔을 때 울릉도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이다.

울릉도 도동항과 저동항 사이에도 옛길이 있다. 길은 도동항 울릉군청에서 시작한다. 울릉등기소를 지나면 초입부터 돌계단으로 만들어진 폭넓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동안 높이를 더하다 보면 어디선가 염소 우는 소리가 들린다.

5분가량 지나면 첫 번째 안부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51호)가 있다. 모노레일을 넘어서면 바로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 바로 뒤로 가느다란 길이 보인다. ‘뽈뚜리지’로 가는 길이다. ‘뽈뚜’는 보리수나무 열매를 가리키는 울릉도 방언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10∼11월에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나무가 많아서 얻은 이름이다.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모험심 강한 울릉도 사내아이들은 영글면 단맛이 나는 뽈뚜를 따먹기 위해 이곳에 올랐다고 한다. 가파른 산길도, 거친 암릉도 울릉도 주민들에겐 그저 삶의 일부였나 보다.

리지(Ridge)는 암릉을 뜻한다. 뽈뚜리지는 도동항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암벽 뒤에 위치한다. 울릉군청에서 바라보면 시가지를 호위하듯 곧추선 산의 등날이다. 올려다보면 기세가 등등해 아득함에 현기증마저 인다. 일반 등산로보다는 어렵지만 길을 잘 아는 유경험자와 동행하면 초보자도 도전해볼 만하다. 하지만 경험 없는 나홀로 산행은 피하는 게 좋다.

숲속으로 들어서면 오솔길이 이어진다. 산 중턱을 휘감아 도는 길을 따라 안부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구멍이 뚫린 바위가 보인다. 염소굴이다. 일대에서 풀을 뜯던 염소들이 비 내리면 들어가던 피난처라고 한다. 뽈뚜리지를 정석대로 해안에서부터 시작하면 넘어야 하는 바위다.

왼쪽에 뽈뚜리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풀숲에 가려진 채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뽈뚜리지는 크고 작은 거친 바위 등날로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곳곳에 거침없는 조망 포인트가 즐비하다. 좌우로 깎아지른 칼날 같은 벼랑이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바위틈에 왕해국이 꿋꿋이 붙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동과 저동 일원의 조망은 장관이다. 도동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도동항 방파제와 일대 해안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남등대와 저동항 촛대바위 등도 시야에 잡힌다. 멀리 죽도가 인사를 건넨다. 푸른색 도화지에 긴 포말 흔적을 남기며 항구를 오가는 배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광각 렌즈로도 채 담기 어려울 정도로 장쾌하다.

뽈뚜리지보다 더 알려지고 걷기 쉬운 길이 내수전과 석포를 잇는 ‘내수전 옛길’이다. 알짜배기 비경을 지닌 울릉도의 깊은 속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내수전 옛길이 시작하는 곳은 울릉도 오징어잡이 전진기지인 저동항이다.

내수전 일출 전망대 주차장까지는 차로도 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 다소 가파른 층계를 10분 남짓 오르면 해발 440m의 전망대에 닿는다. 탁 트인 동해의 길손을 반긴다. 왼쪽으로는 죽도와 관음도, 섬목 해안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저동항이 내려다보인다. 파란 바다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석포로 가는 옛길로 들어선다. 석포마을까지 3.4㎞. 한 시간 반 길이다. 길섶에는 고사리류들이 지천으로 깔렸고, 아름드리 섬고로쇠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고즈넉한 오솔길을 걸으면 짙은 녹음에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우거진 숲 사이로 바다가 언뜻언뜻 비친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30분쯤 지나면 정매화골 쉼터에 닿는다. 오래 전 정매화씨의 외딴집이 있었다고 한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이효영 부부가 살면서 폭우와 폭설로 조난당한 300여 명을 구조한 곳이기도 하다. 와달리 갈림길을 지나면 북면 경계가 나타나고 이후 30분 남짓이면 시멘트 길과 만난다. 다시 20분쯤 가면 석포마을 쉼터와 안용복기념관에 닿는다. 석포는 본디 정들포 또는 정들깨라고 불렸다. 울릉도 개척 당시 이곳에 들어와 살던 사람 중 누군가 이사를 가게 되면 몇 날 며칠이고 울 정도로 서로 정을 붙이고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다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돌이 많다면서 제멋대로 석포라는 한자 지명으로 바꿨다.

▒ 여행메모

울릉도까지 직접 가는 것은 아니지만 비행기를 이용하면 밤잠 설치지 않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다.

김포에서 대구까지 비행기(55분 소요)로 날아간 뒤 포항여객선터미널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해 배를 타고 6시간30분 정도면 울릉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서울에서 새벽 2시에 집결해 관광버스를 타고 항구로 이동하던 여정보다 3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여행박사가 개발·판매 중인 ‘비행기 타고 울릉도 여행’ 상품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과 4만∼5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박 3일 일정에 육로관광A코스(도동∼사동∼통구미∼현포∼천부∼나리분지)와 육로관광B코스(봉래폭포∼저동 촛대바위∼내수전 전망대)가 있다. 사전 예약을 하면 독도 여행도 가능하다.

가격은 평일 34만1000원부터. 7월 21일까지 매주 월·화·토요일 출발하며 최소 인원은 10명이다.

울릉도에는 독특한 먹거리가 많다. 따개비칼국수와 따개비밥이 유명하다. 보배식당(054-791-2683)의 홍합밥도 별미다. 약초를 먹고 자란다는 울릉 약소도 빼놓을 수 없다.

울릉=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