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나’란 협상에서 실패했을 때 가지고 있는 차선책, 즉 최선의 대안을 의미한다. 사실 협상은 최선의 대안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인 것이다.”
제가 쓴 ‘인문학을 하나님께’(규장, 16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협상의 법칙은 최상의 차선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최선의 이삭을 기다리지 못하고, 차선으로 이스마엘을 낳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차선이라기보다 미봉책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최선이 있을 때는 차선은 차선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성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더군다나 협상할 때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서로의 입장 차이로 ‘최상의 차선’을 찾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최선의 삶을 살지 못한 탕자에게 ‘너는 품꾼이 아니라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시며 다시금 새 힘을 주십니다. 실패가 곧 끝이 아니듯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습니다. 평범도 지극하면 비범이 됩니다. 차선도 지극하면 최상이 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4)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