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방문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회담까지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도 미국의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싱가포르 방문을 위한 ‘데드라인’이 지났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경우 경호와 의전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났다”며 “싱가포르에서 3자 정상이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깜짝 방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전선언까지 다루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청와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맞춰 종전선언이 추진됐던 것은 앞으로 이뤄질 북·미 합의와 이행조치를 보증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면담한 뒤 “한국전쟁 종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에 대한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혀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북·미 양측 간 사전 협상이 험난한 굴곡을 겪으면서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도출하는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플랜B 마련에 착수했다.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이 큰 판문점이나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청와대는 우선 판문점에서 3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정전협정 체결일인 다음 달 27일이 유력해 보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협상 상황이 녹록지 않고, 양측의 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개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종전선언을 통해 비핵화 로드맵의 입구를 여는 방안은 다소 어려워졌다”며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 다음 종전선언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북·미 정상회담 개막을 앞두고 양측의 협상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당국 간 정보 교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에는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미 양측에서 각각 협상팀이 파견된 만큼 서 원장이 북·미 협상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급파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 원장이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한 것은 현지에서 열린 안보 관련 각종 회의 및 부속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와 함께 열린 정보 관련 비공개 회의에 서 원장이 참석하는 차원이었다는 취지다. 서 원장이 남·북·미 3자 정상 간 종전선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러나 “남·북·미 3자 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 종전선언은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북·미 정상회담 준비 동향 등을 점검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