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라이벌’ 한국과 일본은 그간 월드컵에서 공동운명체에 가까웠다.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일본은 16강에 올랐다. 한국이 첫 원정 16강이라는 쾌거를 달성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일본도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했다. 함께 출전한 나머지 대회(1998 프랑스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 모두 고전이 예상된다.
6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한 일본 대표팀의 분위기는 지금 매우 어수선하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지난 4월 갑자기 경질되고 니시노 아키라 협회 기술위원장이 사령탑에 오른 뒤 중심을 못잡고 있다.
할릴호지치호는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하며 본선 진출을 확정짓긴 했지만 아시아의 축구 강국을 자처하는 일본답지 않은 경기력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한국에 1대 4로 대패하면서 할릴호지치 감독에 대한 여론이 돌아섰다.
일본은 월드컵 개막 불과 두 달을 앞두고 감독을 교체하는 강수를 뒀지만 니시노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새 감독 체제하에서 치른 첫 평가전인 지난달 30일 가나와의 경기에서 0대 2로 패한 니시노호는 9일 스위스에도 0대 2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공수 양면에서 모두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본 언론들은 “기대감이 0%”라며 대표팀을 비판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팀의 반등을 기대케 하는 선수는 2010년 월드컵서 16강을 이끌었던 에이스 혼다 게이스케(파추카)다. 2017-2018시즌 멕시코리그로 이적한 혼다는 29경기에서 10골을 터뜨려 전성기 시절의 활약을 재현했다. 주무기는 무회전 슛이다. 혼다는 남아공월드컵 덴마크전에서 환상적인 왼발 무회전 프리킥 골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바 있다.
혼다는 할리호지치 감독 시절 전력 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니시노 감독은 부임 후 곧바로 그를 다시 부르며 많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혼다는 가나전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월드컵 전 좋은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면서도 “우리는 하나로 뭉쳐있다”고 강조했다.
유럽파의 대표격인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와 오카자키 신지(레스터시티)가 얼마나 활약할지도 관심거리다. 혼다, 가가와, 오카자키의 빅3는 일본의 공격을 도맡고 있다. 이들이 어느 정도의 골 결정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일본의 조별리그 성적이 판가름 날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폴란드와 콜롬비아, 세네갈과 H조에 편성되자 “특별한 강팀이 없는 ‘꿀조’”라며 16강 진출을 자신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일본 내에서는 잿빛 전망이 지배적이다. 혼다는 스위스전을 마친 뒤 “위기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