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병력·장갑차·차단막… 요새된 ‘김정은 숙소’

통제선 밖으로 밀려난 취재진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 앞에 통제구역이 생기면서 취재진이 통제 구역 밖으로 밀려 났다.


金 숙소 진입차선 통째 막아 고성능 카메라도 곳곳 설치
취재진 100m이상 쫓겨나 호텔 내부엔 ‘방탄 경호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은 단 하루아침에 요새로 탈바꿈했다. 싱가포르 당국은 10일 오전부터 호텔 쪽 2개 차선을 통째로 막아버리고 지나는 모든 차량을 검색했다. 경찰 인력은 대폭 증원됐고 군용 산탄총과 자동소총을 든 네팔 구르카족 용병 출신 무장병력과 중무장 장갑차까지 눈에 띄었다. 호텔 주변에는 김 위원장을 보지 못하도록 높이 180㎝가 넘는 장막이 쳐졌고, 고성능 카메라도 곳곳에 설치됐다.

세인트 리지스 호텔은 전날까지만 해도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투숙객은 물론 취재진이 호텔 로비까지 진입해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런 느슨한 분위기는 김 위원장 도착 당일인 이튿날 급변했다. 싱가포르 당국은 호텔 진입로에 검문소와 차단기를 설치했다. 택시 등 일반 투숙객을 태운 차량도 예외 없이 탑승자 전원을 내리게 하고 검색을 실시했다. 호텔 로비에는 X선 검색 장비와 휴대용 금속 탐지기를 든 인력이 배치됐다.

국내외 취재진을 대하는 경비원의 태도도 훨씬 엄격해졌다. 전날까지 호텔 로비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100여m 떨어진 길 건너편으로 쫓겨났다. 경비원들은 호텔에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소속과 방문 목적을 물었다. 취재진은 이유를 불문하고 출입을 금지했다. 호텔 앞 인도 통행은 막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호텔 방향으로 돌리자마자 곧장 달려와 제지했다. 백인 관광객 가족이 신기한 듯 입구를 들여다보자 경비원이 손을 저으며 “보지 말고 가던 길을 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이 길마저 막아버리고 행인들을 멀리 돌아가게 했다.

호텔 외곽은 싱가포르 경찰과 구르카족 용병이, 호텔 내부는 김 위원장을 바로 곁에서 지키는 ‘방탄 경호단’이 맡는 것으로 보인다. 구르카족 용병 역시 일부는 호텔 안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는 검은색 정장을 입었던 방탄 경호단은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를 감안한 듯 저고리 없이 긴팔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 차림이었다.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한 듯 이들은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초상 휘장을 달지는 않았지만 건장한 체격에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방탄 경호단 3∼4명과 정장 차림의 북한 관계자, 싱가포르 경찰이 뭔가를 논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세인트 리지스에서 600m쯤 떨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 샹그릴라 호텔도 손님맞이 준비에 본격 들어갔다. 샹그릴라 호텔 연회장인 그랜드볼룸에는 북·미 정상회담 관련 행사가 예정된 듯 장막이 설치됐다. 판문점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막판 협상을 진행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로비에서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계 상태는 김 위원장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에 비해 한결 느슨했다. 샹그릴라는 이날 오후까지도 별다른 검문검색 없이 로비 안까지 자유롭게 진입이 가능했다. 세인트 레지스에서 검문검색 작업이 본격화된 바로 그 시각, 샹그릴라에서는 검문소는커녕 바리케이드 설치조차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차량 차단기와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은 오후로 접어든 뒤에야 완료됐다. 대로변에 바짝 붙은 세인트 리지스와 달리 샹그릴라는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점도 경계수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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