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숙소 경계 비교적 느슨… 투숙객 로비 출입 자유로워
金 숙소 아침부터 요새 방불… 주변엔 높이 180㎝ 넘는 장막 호텔 내부엔 ‘방탄 경호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다섯 시간을 사이에 두고 싱가포르에 차례로 도착했다. 1년 넘게 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두 사람을 맞기 위해 싱가포르 당국은 이날부터 총력 경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 정상에 대한 경호 방식은 북한과 미국의 문화 차이만큼이나 대조를 이뤘다.
보다 세련된 쪽은 미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오후 8시20분 파란색 넥타이 차림으로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싱가포르 파야 레바르 공군기지 활주로를 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차인 ‘비스트’에 올라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비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피해 다른 출입구를 거쳐 호텔로 들어왔다.
샹그릴라 호텔은 이날 하루 종일 비교적 느슨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샹그릴라 호텔 주변의 차량 검문소와 콘크리트 장벽, 바리케이드 등은 오후쯤에야 배치가 완료됐다. 호텔 로비는 투숙객은 물론 취재진의 출입도 자유롭게 이뤄졌다. 샹그릴라 호텔 경비 인력들은 진입 차량 운전자에게 “승객만 내려주고 곧장 떠나라”고만 지시했을 뿐 방문 목적 등은 상세히 캐묻지 않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판문점 접촉을 했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이날 오전 호텔 로비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김 위원장 경호는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틀어막는 식으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을 태운 벤츠 S600 풀만 가드 리무진은 오후 3시40분쯤 경찰 오토바이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호위를 받으며 시속 20㎞의 느린 속도로 유유히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도로는 김 위원장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전면 통제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 호텔과 샹그릴라 호텔은 570m 거리로 걸어서 5∼6분 걸린다.
김 위원장의 벤츠 리무진은 양쪽 전조등 옆에 깃발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왼쪽에는 붉은 바탕에 국무위원장 휘장을 수놓은 깃발이, 오른쪽에는 인공기가 펄럭였다. 양쪽 뒷문에도 금도금한 국무위원장 휘장이 선명했다. 김 위원장의 다른 전용차인 검은색 마이바흐 62가 벤츠 리무진 뒤를 따랐다. 불의의 습격에 대비해 김 위원장이 어느 차량에 탑승했는지 모르도록 두 대가 동시에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세인트 리지스 호텔은 이날 아침부터 요새를 방불케 했다. 경찰 인력은 대폭 증원됐고 군용 산탄총과 자동소총을 든 네팔 구르카족 용병 출신 무장병력과 중무장한 장갑차까지 눈에 띄었다. 호텔 주변에는 김 위원장을 보지 못하도록 높이 180㎝가 넘는 장막이 쳐졌고, 고성능 카메라도 곳곳에 설치됐다.
세인트 리지스 호텔은 전날까지 취재진이 호텔 로비 안에 들어가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김 위원장 도착 당일 급변했다. 호텔 진입로에 검문소와 차단기가 설치됐다. 택시 등 일반 투숙객을 태운 차량도 예외 없이 탑승자 전원을 내리게 하고 검색을 실시했다. 호텔 로비에는 X선 검색 장비와 휴대용 금속탐지기를 든 인력이 배치됐다.
호텔 외곽은 싱가포르 경찰과 구르카족 용병이, 호텔 내부는 김 위원장을 바로 곁에서 지키는 ‘방탄 경호단’이 맡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는 검은색 정장을 입었던 경호단은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를 감안한 듯 저고리 없이 긴팔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 차림이었다.
싱가포르=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