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과정은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특급 의전을 펼쳤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용하는 고위급 전용기를 빌려줘 최고 배려를 했다. 김 위원장이 탄 항공기는 중국 대륙 최남단인 하이난성을 지날 때까지 철저하게 중국의 내륙 항로를 이용했다. 공해상 항로 이용 시 우려되는 ‘사고’ 방지 차원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전용기인 ‘참매 1호’와 수송기까지 총 3대의 비행기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꺼번에 떠 연막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항공기 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다24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탑승한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CA122편은 오전 8시30분 평양공항에서 싱가포르로 출발했다. 당초 목적지가 베이징으로 표기됐으나 베이징 부근에서 갑자기 CA61로 편명을 변경한 뒤 싱가포르로 갔다. 보잉747-4J6 기종의 이 항공기는 시 주석이나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해외순방 시 사용하는 전용기다. 이 전용기는 베이징을 출발해 평양에 6시20분쯤 도착했다가 2시간여 만에 다시 이륙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 2시36분(한국시간 오후 3시36분) 창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에어차이나의 보잉 747 전용기 외에 참매 1호도 오전 9시30분쯤 평양에서 출발해 싱가포르로 떠났다. 참매 1호는 일류신(IL)-62M이라는 기종 외에 콜사인이나 항공 편명도 없이 운항했다.
김 위원장이 참매 1호 대신 중국에서 빌린 고위급 전용기를 이용한 것은 안전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구소련 시절 제작된 참매 1호는 제원상 비행거리가 1만㎞로 4700㎞ 거리인 싱가포르까지 재급유 없이 곧바로 갈 수 있지만 안전 우려가 제기됐었다. 대외적으로 북한에 장거리 비행기조차 없다는 ‘체면 손상’보다는 김 위원장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셈이다.
또 참매 1호는 CA122편과 1시간 정도 시차를 두고 출발해 김 위원장이 어떤 비행기에 탔는지 혼선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띄울 때 동시에 같은 모양의 ‘가짜 에어포스원’을 이륙시켜 테러나 비상사태에 대비하듯 연막을 치는 차원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탄 CA122편은 철저하게 중국 내륙으로 운항했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출발해 중국 동북지방과 베이징을 거쳐 최남단인 하이난성까지 날아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김 위원장이 혹시 모를 격추 시도를 우려해 철저하게 중국 내륙 항로를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영공에서는 중국 측의 전투기 호위가 제공됐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사용할 식자재와 차량, 물품을 실은 고려항공 수송기는 오후 1시30분쯤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 수송기는 지난달 김 위원장의 중국 다롄 방문 때 검은색 전용 차량을 수송했다. 전날에는 북측 선발대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에어차이나 CA60편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